[책&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복제인간 윤봉구
임은하 지음, 정용환 그림/비룡소(2017)
어린이도서관에서 가장 목이 좋은 자리에 어떤 책이 있을까. <빤스맨>, <윔피키드>, <제로니모의 환상모험> 같이 오락적 요소가 강한 시리즈가 있다. 만약 이런 책들이 도서관에 한 권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이 도서관에 와야 할 이유가 없다.
어린이 책은 구매자와 독자가 달라서, 부모와 아이들은 읽을 책을 두고 늘 갈등한다. 어른이 좋아하는 책은 아이들이 심드렁하다. 만약 어린이들이 직접 책을 심사하면 어떨까. 프랑스에서는 어린이들이 책을 읽고 토론해 수상작을 고르는 ‘앵코 티블상’이라는 어린이 문학상이 있다. 김진경의 <고양이 학교>가 이 상을 수상했다. 국내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다. 어린이심사위원단이 최종심에 참가하는 ‘스토리킹상’이다. 문학상 심사에 어린이가 참여하자 탐정, 무협, 히어로, 에스에프(SF)처럼 다양한 장르와 방귀, 복제인간, 귀신 등 재기발랄한 소재의 작품들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복제인간 윤봉구> 역시 어린이심사위원의 지지를 받아 수상작이 되었다. 1997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은 인류에게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는 심각한 윤리논쟁을 불러왔다. 동화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과학자인 엄마는 아들 민구의 유전자로 복제인간 봉구를 만들었다. 쌍둥이처럼 형을 닮은 동생 봉구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복제인간 윤봉구>는 이런 가정으로 시작한다.
복제인간 봉구가 태어나자 엄마는 과학자의 삶을 포기하고 시골로 숨어든다. 세계 최초의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봉구를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봉구는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진다. 영화에서는 흔히 진짜 인간의 수명 연장을 위해 복제인간을 만들지 않던가. 게다 봉구의 원본인 형 민구는 심장이 약하다. 혹시 엄마는 아픈 형을 위해 봉구를 만든 건 아닐까. 봉구는 깊은 절망에 빠져 가족을 불신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봉구에게 “나는 네가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문의 편지가 전달된다. 가족 말고 봉구의 비밀을 아는 누군가가 또 있다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협이 시시각각 봉구를 조여 온다.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은 중국집 진짜루에서 펼쳐진다. 최고의 짜장면을 만들고 싶은 봉구는 진짜루에서 견습생으로 일한다. 절대미각 봉구와 짜장면 달인 할아버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흡사 절대 무공을 익히는 스승과 제자의 세계를 그린 코믹 무협 같다.
처음에는 복제인간을 둘러싼 미스터리 같지만 읽다보면 가족의 사랑을 의심하고 확인하며 자아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성장기라는 걸 알게 된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한번은 ‘혹시 내가 고아는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는다. ‘만약 복제인간이라면’이라는 가정은 이런 전통적 질문의 다른 버전이다. 그렇다면 첨예한 소재와 달리 결말은 가족애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겠다. 부모와 어른이 모두 좋아할 만한 동화다. 초등 4~6학년.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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