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마르크 로제 지음, 윤미연 옮김/문학동네·1만3800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 알란은 양로원 생활의 무료와 권태, 억압에서 벗어나 양로원 바깥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프랑스 작가 마르크 로제(62)의 소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의 주인공들은 요양원 안에서 변화와 모험을 꾀한다. 그리고 그 매개는 책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수레국화 요양원에 취직한 열여덟살 청년 그레구아르가 책방을 운영했던 노인 피키에씨를 만나 낭독의 세계에 입문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생 책을 읽고 남들에게 책을 권하며 살아 온 피키에씨는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서점을 정리하고 요양원으로 들어왔다. 그는 아끼는 책 3천권을 가져왔는데,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3만권 중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분량이었다. 두고 온 나머지 책들을 일러 그는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에 비견할 만한 고통”, ‘환상통증’이라고 표현한다.
책이 곧 삶이다시피 했던 피키에씨와 달리, 그레구아르에게 책은 “학교에서 겪은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불쾌한 존재일 뿐이다. 나무를 좋아했지만 나무와 상관없는 요양원에 취업한 그에게 피키에씨는 대신 책을 읽어 줄 것을 요청한다. 녹내장 때문에 책을 직접 읽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 그레구아르가 그렇게 상극과도 같았던 책과 낭독의 세계에 입문하고, 피키에씨뿐만 아니라 요양원의 다른 노인들 역시 그레구아르의 낭독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독자는 책과 낭독의 가치를 새삼 절감할 법하다.
전문 낭독가 출신 프랑스 작가 마르크 로제의 첫 소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는 요양원 노인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청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은 영화 <더 리더: 책 읽어 주는 남자>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피키에씨의 첫 선택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학교에서 퇴학 당한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반항과 방황에 그레구아르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 소년은 바로 나다. (…) 타인의 삶을 그렇게 체화해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책과 문학의 발견이다.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던 모든 매듭들이 조금씩 조금씩 풀린다.” 낭독의 발견. 이제 그레구아르에게는 책이 전과는 달리 보인다. “나를 부르는 이야기들이 보인다.”
<그레구아르…>는 주인공 그레구아르가 피키에씨의 지도 아래 책과 낭독의 가치를 알아 가는 과정을 한 축으로 삼고, 우울하게 가라앉았던 요양원의 분위기가 그레구아르의 낭독을 통해 생기와 활력을 얻는 과정을 다른 한 축으로 삼는다. 여기에다가 동성애자인 피키에씨의 아픈 지난 사랑 이야기와 그레구아르 자신의 현재형 사랑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란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더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타자인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행위와도 같은 거지.”
“텍스트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는 건 정말 짜릿하고 감동적이니까. 어떤 한 단어 때문에 이전에 읽은 어떤 책의 어떤 단락을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을, 밀려갔다 싶어도 매번 새롭게 태어나면서 끊임없이 되밀려오는 집단창작물이라고 생각하렴.”
피키에씨가 그레구아르에게 들려주는 책과 문학에 관한 말은 대학의 문학 교양 수업 교재로 손색이 없다. 책은 나와 타자의 만남이고, 문학 텍스트들은 바깥 사회와 관련을 맺는 것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선행 텍스트들의 영향과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상황과 청자(聽者)에 맞게 낭독 대상으로 선정된 작품들은 일종의 추천 도서로도 구실할 만하다.
작가 마르크 로제는 1992년부터 프랑스 전역의 서점과 도서관 등을 다니며 낭독회를 진행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출판 전문지 <리브르 에브도>가 주는 ‘리브르 에브도 도서관 대상’의 심사위원장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책과 함께하는 프랑스 일주>를 비롯해 여행기를 몇 권 낸 그가 지난해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이 <그레구아르…>다. 이 소설에서 가령 모파상의 단편 ‘목걸이’ ‘투안 영감’ ‘매매’ 등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든가, “사람들 앞에서 책을 읽는 기술은 문장들이 그 자리에 갑자기 처음 나타난 것처럼 들리게 하는 데 있단다”와 같은 조언은 수십년 간 낭독가로 활동해 온 작가의 내공을 알게 한다.
피키에씨가 요양원에 들어오기 전에 운영했던 서점의 이름은 ‘곁가지 문학’이었다. 이 책에서도 에이즈로 잃은 피키에씨의 동성 연인에 얽힌 추억, 그리고 백인 청년인 그레구아르와 세네갈 출신으로 그보다 열살 연상인 흑인 여성 간호사 디알리카의 사랑은 ‘곁가지’ 이야기로서 소설에 살과 피를 더한다. “수레국화엔 아직도 불끈불끈한 할아범들, 촉촉이 젖어드는 할멈들, 성행위를 통해 여전히 절정을 맛보는 사람들이 있다.” 남녀 노인의 밀회 장면을 목격한 그레구아르는 이런 새삼스러운 깨달음에 이르고, 피키에씨와 공모 아래 화장실 변기와 배관 들을 라디오 전파 삼아 ‘에로소설’을 방송하기도 한다.
소설은 시종 경쾌하고 발랄한 어투로 서술되지만, 피키에씨가 죽음으로 향하는 뒷부분으로 가면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평생 책을 통한 간접적인 삶을 살았을 뿐 ‘진짜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피키에씨는 그레구아르에게 자신을 대신해 200킬로미터 밖 수도원까지 도보 순례를 해 달라고 부탁한다. 우여곡절 끝에 수도원까지 순례를 마친 그레구아르가 그사이 세상을 뜬 피키에씨를 책의 세계로 돌려보내는 마지막 장면에서, 피키에씨의 분신과도 같은 책과 그레구아르의 영웅인 나무는 라틴어 ‘liber’를 매개로 하나로 합쳐진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