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책거리
이번주엔 각종 ‘선언’을 읽었습니다. 1960~70년대 미국을 휩쓴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선언문을 엮은 <페미니즘 선언>(2016)이나 작년 말에 나온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을 읽다가 급진적인 단어 선택에 놀라곤 했습니다. 하긴, 선언은 “현실을 고쳐 적는 것이자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내는 작업”(한우리)이기에 작성자들은 분노를 피 토하듯 종이에 수놓았을 것입니다.
얼마 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 1호 ‘세대’의 첫글 제목도 ‘페미니즘 세대 선언’입니다. 박동수 철학서 편집자는 새로운 세대를 페미니즘 세대라는 이름으로 제시합니다. 청년이라는 남성적 기표 또는 근대라는 시간성에 포섭되지 않는 페미니즘 세대가 어떻게 정치를 쇄신할지 새로운 문법을 기대하며 필자는 글을 맺습니다. 이 잡지에 실린 고유경 원광대 교수의 ‘세대, 기억의 공동체’를 보면, ‘인권선언’을 낳은 프랑스혁명에서 세번째 이념인 ‘박애’의 정확한 번역어는 ‘형제애’라고 합니다. 혁명은 가부장적 왕권에 대한 아들 세대의 도전이라는 것이죠. 독일에서도 시민 계급의 젊은 남성을 가리키는 말로 ‘세대’가 쓰였다니 지난해 대한민국을 휩쓴 세대론 논쟁에서 젠더 개념이 빠졌던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구나 뒤늦게 무릎을 치게 됩니다.
선언은 글로 적지만 말로 하는 것입니다. 낭독하고 소리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정여울 작가는 ‘문학이 필요한 시간’(7면)에서, 언어의 기원은 문자가 아니라 말이었고 낭독을 듣다 보면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합니다. 그 이야기에 힘입어 저도 오늘은 멋진 선언문 하나를 골라 들어볼까 합니다. 각종 시국선언은 그만 듣고 싶고, 전염병 종결 선언은 빨리 듣고 싶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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