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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제국적 생활양식’ 버릴 수 있습니까

등록 2020-01-31 05:00수정 2020-01-31 09:15

독일 학자들 ‘북반구 중간계급의 풍요로운 삶은 남반구로의 외부화 덕분’ 일갈
“사회주의에는 자전거로만 도달할 수 있다” 좌파와 생태주의 급진적 만남 시도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
울리히 브란트·마르쿠스 비센 지음, 이신철 옮김/에코리브르·1만8000원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착취>가 말하는 ‘제국적 생활양식’을 이해하려면 지디피(GDP) 3만 달러 시대를 사는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삼성이 베트남 공장에서 만든 갤럭시 스마트폰을 들고,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길러낸 ‘하우스 딸기’를 한겨울에 먹으며, 필리핀 ‘이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제국적’이라는 형용사는 이 책이 ‘북반구’라고 표현하는 제1세계의 풍요로운 삶이 ‘남반구’(제3세계)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수탈로 인해 가능하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생활양식’이라는 개념은 ‘생산양식’을 포괄함으로써 ‘생활영위’ 및 ‘라이프스타일’과 구별된다. 독일 대학교수인 지은이들의 주장은 최근의 모든 좌파적 논의를 낡은 것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급진적이다. 예를 들어 북반구에서의 계급투쟁에 따른 복지 확대조차 제국적 생활양식을 확산시킨 계기로 평가한다. 북반구의 지배계급만이 누릴 수 있었던 제국적 생활양식은 1930년대 미국에서 출현한 포디즘(적 대량생산) 이후 피지배 계급(특히 중간계급)으로까지 퍼졌고,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광범위하게 공유된 피지배자들의 합의”로서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은이들이 말하는 제국적 생활양식의 첫 번째 특성, ‘헤게모니와 주체화’다. “제국적 생활양식, 즉 자동차 이용, 자기 집에 대한 꿈, 저렴한 오락 및 통신 기기의 구매 근저에 놓여 있는 자명하고도 반복적인 일과를 지닌 일상”은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사회적 (재)생산의 일상적 생동성과 매력의 구성 요소가” 되어 전 지구적으로 보편화했다. “지배가 개인을 단순히 강제하고 규율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욕망과 욕구에 호소한다면, 이는 개인적 정체성의 일부가 되며, 그에 따라 (지배는) 더욱더 효과적이게 된다.” 

&lt;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gt;의 지은이들은 최근 북반구에서 스포츠실용차(SUV) 판매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스유브이는 연료를 많이 쓰는 대신 작은 승용차보다 안전하기 때문에 “중간 계급이 ‘잠재적 몰락의 불안’에 대처하는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출처 게티이미지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의 지은이들은 최근 북반구에서 스포츠실용차(SUV) 판매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스유브이는 연료를 많이 쓰는 대신 작은 승용차보다 안전하기 때문에 “중간 계급이 ‘잠재적 몰락의 불안’에 대처하는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출처 게티이미지

제국적 생활양식의 또 다른 특성은 외부화와 위계화다. 외부화란 남반구의 인간과 자연(자원)에 대한 착취(채굴주의)뿐 아니라 산업쓰레기나 이산화탄소처럼 자연 파괴의 대가를 외부에 전가하는 일체의 행위를 가리킨다. 위계화는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 계급과 계급 사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 물고 물리는 상하관계를 말한다. “제국적 생활양식은 사회적 불평등에 토대하며 그것을 재생산한다. (…) 제국적 생활양식은 상위 계급의 풍요가 종속 계급에게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실현 가능한 행복의 약속으로 나타나는 동안에만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사회를 안정시킨다.” 이익이 집중되는 곳에서 사회관계의 안정화에 기여하는 것이 바로 제국적 생활양식이 내포한 모순이다. 실제로 “포디즘 이후 북반구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는 남반구 노동자들의 착취에 의해 완화되었다.” 계급투쟁의 결과로 쟁취한 제도적 타협의 결과였지만, 그 본질은 ‘착취의 외부화’에 있었다는 문제 의식이다.

문제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를 맞아 남반구의 경제발전이 가속화하면서 ‘외부화할 수 있는 외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구적 차원의 생태 위기와 더불어 제국적 생활양식이 맞닥뜨린 직접적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들은 전 세계적인 이주자와 난민 증가의 원인도 “제국적 생활양식이 남반구에 미친 재앙적 충격”에서 찾는다. 북반구 노동계급의 쇼비니즘 또는 인종주의로의 경도, 그리고 극우파의 부상은 “제국적 생활양식을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보호하기 위한 북반구의 관련 세력들의 시도”라고 해석한다.

이 책에 대한 독일 좌파의 반응은 크게 둘로 갈렸다고 한다. 반인종주의 진영은 환호했지만, “‘계급 정치 진영’은 다소 회의적”이었다. 특히 후자는 이 책에 대해 “북반구 다국적 기업의 시이오(CEO)를 그의 노동자들과 동일하게 비난하고, 이들과 다른 한편의 남반구 보통 사람들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균열을 만들”어 냈으며, “현재의 위로부터의 신자유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계급투쟁의 적대적인 계기와 잠재력을 경시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은이들은 “사회주의에는 오직 자전거로만 도달할 수 있다”는 호세 안토니오 비에라갈로(칠레 아옌데 정부에서 법무부 차관을 지낸 정치가)의 말과,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충분하다”는 외침을 인용하며, 좌파와 생태주의의 랑데부를 시도한다. “우선적 관건은 생태학적 위기를 바로 그 참된 모습으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 어쨌든 필요한 것은 (녹색자본주의 같은) 위장환경주의의 위험을 반성하고 인종주의적이고 착취적이며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이며 파괴적인 프로젝트에 대해 빨간 선을 긋는 것이다. (…) 미래의 일자리와 부는 환경 파괴가 아니라 환경 보호에 의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제국적 생활양식의 극복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생태학적 전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가능성과 여기에 노동자와 노조가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창출할 것이다. 그러한 노동 계급 환경주의의 결정적 구성 요소는 임금 노동과 생태학 사이의 유기적 연계를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을 사용 가치 및 사람과 사회의 재생산 필요를 위해 재편성함으로써 사회적 재생산과 돌봄 노동 중심 무대를 정립하는 것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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