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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위기 원인은 정파성 자체보다 극단성에 있다”

등록 2020-01-23 17:24수정 2020-01-24 02:42

조항제 교수, 강자 논리 편승 ‘전통적 객관성’ 넘어 약자 편에 서는 ‘공정성’ 이론 제시
“권력 취재망 탈피해 출처·관점 다원화…‘타자’ 연계 늘리는 실용주의적 객관성 확립해야”
한국 언론의 공정성: 이론적 구성

조항제 지음/컬처룩·3만원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파성(정치 병행성)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항제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공식적 권위(권력적 취재망)에 대한 맹목적 추종(출입처 중심주의), 단일한 관점으로 익명 취재원 남발하기 등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관찰, 이런 관행의 종합적 결과로서 ‘헐거운’ 객관성에 문제의 본질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파성(정치 병행성)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항제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공식적 권위(권력적 취재망)에 대한 맹목적 추종(출입처 중심주의), 단일한 관점으로 익명 취재원 남발하기 등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관찰, 이런 관행의 종합적 결과로서 ‘헐거운’ 객관성에 문제의 본질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세계적 수준에서 최하위라는 사실은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36개국 미디어의 전반적 신뢰도를 조사한 로이터 연구소의 2017년 조사를 보면, 꼴찌는 한국이었다. 1위는 핀란드였고, 영국은 17위, 미국은 28위였다.

한국 언론에 대한 낮은 신뢰는 ‘정치 불신’과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조항제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 언론의 공정성: 이론적 구성>에서 이를 ‘불신의 나선’ 이론으로 설명했다. “정치와 병행하면서 언론은 정치의 문제를 상당 부분 떠안았지만, 문제를 약화하기보다 가중시켜 정치에 되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 병행’이란 언론이 정치성을 띠며 정치를 대행하는 현상을 말한다. 조 교수는 “불충분한 민주화 이후, 보수 정부 20년과 진보 정부 10년을 번갈아 거쳐 다시 진보 정부에 이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 관계는 (…) ‘직선이기보다는 원’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이른바 ‘조중동’ 세 신문의 시장 장악과 편향적 블록화, 여기에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등 공영 방송에 대한 정부의 후견주의적 지배 현상은 민주주의 발전에 촉진제가 되기보다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며 “진보와 보수 진영은 대립을 거듭해 여론 독과점, 정치 병행성, 적대적 미디어 신드롬, 초적대주의, 필터 버블 등을 성행시켰다. 이런 과정에서 공정성은 현실과 대각에 선, 그야말로 반사실적인(counterfactual) 이념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치 병행성’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조 교수는 말한다. 정파성이라고 바꿔 부를 수 있는 정치 병행성이 “글로벌 수준에서는 보편적인 형태이며, 오히려 미국의 객관성(중립성)이 예외적”이기 때문이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정당과 언론은 병행적이며, 그렇지 않은 미국 역시 유럽을 닮아가고 있다.” 문제는 극단성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경우 “대립하는 세력 간 공역대가 작은 ‘극단’의 형태를 띠며, 정치 불신을 조장하는 부정성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 독일이나 스위스도 정치 병행적이지만 갈등이 극단적이지 않다. 미국이나 영국은 중간이다.”

극단성을 줄이려면 “일종의 금도 같은 최소한의 선, 전문직 언론으로서 지켜야 하는 윤리적·합리적 경계”로서의 ‘공역대’를 넓혀야 한다. 조 교수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공역대는 공정성에 대한 이론적 합의다. “대상을 추상성 높은 이론으로 하게 되면, 불필요한 현실의 마찰을 생략할 수 있게 되어 같은 고민의 터전을 만들기 좀 더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저널리즘 공정성의 철학적 기초를 미국 위스콘신대 명예교수 스티븐 워드의 ‘실용주의적 객관성’에서 찾는다. 실용주의적 객관성이란 객관성이 가진 실증주의적, 절대적 성격의 한계를 실용주의로 극복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전통적 객관성을 구성하는 ‘사실성·공평성·비편향성·독립성·비해석(해석하지 않음)·중립성’ 가운데, 실용주의적 객관성은 ‘비해석’과 ‘중립성’을 거부한다. 저널리즘에 적용하면, “스트레이트 기사부터 사설에 이르기까지 저널리즘의 모든 형태를 해석으로 인식한다. 객관성은 해석의 부재가 아니다. (…) 기자가 모든 면에서 엄격하게 중립적이라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스티븐 워드)

예를 들어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나라의 인구가 줄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줄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는 진술은 모두 참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적합한 서술은 ⓓ라고 할 수 있다. “‘학살’이라는 단어 속에는 수백만 명이 ‘나치 치하의 조직적이고 잔인한 작전’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정확하고 정밀한’, 그래서 객관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객관성의 가장 큰 해악, 곧 인용문의 ⓐ, ⓑ, ⓒ와 같은 ‘사실적으로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짓일 수 있는 기사’가 횡행하는 현상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객관성 전체를 위협했고, 최근 들어서는 아예 진실 자체가 무시되는 탈진실 현상까지 초래했다.”

객관성이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가 1950년대 미국 언론의 매카시즘 보도다. 비비시(BBC) 출신 언론학자 바비 젤리저는 “매카시에 대응해 미국의 언론인들은 ‘왜 그것이 중요한지’ 묻는 것은 잊어버리고, ‘언론이 어떻게 보일지’에 치중해 뉴스만 기계적으로 중계하는 데 신경 썼다. 여기서 아이러니는 미국의 (국제적) 권력이 결정(結晶)되는 시점에 언론이 그 권력에 너무 무비판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저널리즘의 권위가 쇠퇴해 버렸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용주의적 객관성 또는 변증법적 객관성의 철학적 핵심은 불완전주의다. “우리가 불변하거나 완전무결한 무언가를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늘 오류를 범하므로 수정이 불가피하고(오류주의), 진보하기 위해서는 실패가 예비된 새로운 실험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믿는다(실험주의). 또한 진실 역시 사실과 해석의 한 조합이라고 받아들임으로써(해석주의) 비관점주의나 중립주의와 결별한다.

비관점주의나 중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천적인 이론으로 조 교수는 ‘비판적 실재론’과 ‘입장(관점)인식론’을 소개한다. 비판적 실재론이란, 존재론으로 볼 때 인간이 확인할 수 있든 없든 외부에 실재가 존재한다고 보는 ‘실재론’이라는 점에서 칸트 류의 불가지론과 대척점에 있으며, 실재를 불충분하게 반영하는 (메타)이론들, 예컨대 실증주의나 사회적 구성주의(인식론적 상대주의)에 반대하며 사회적 고통과 악을 만드는 구조에 비판적이라는 의미에서 ‘비판적’이다.

입장(관점)인식론(standpoint epistemology)은 페미니즘 과학자 샌드라 하딩이 근대 과학의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도입한 개념으로 “특히 성차별주의와 인종주의, 이성애중심주의와 계급 억압 등이 결합한 지금 사회의 권력관계”가 객관성을 해치기 쉽기 때문에, “여성·노동·소수 인종·소수 민족 등 주변부의 관점이야말로 그런 문제를 제대로 보면서 ‘강한’ 객관성을 성취해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존 롤스가 주장한 ‘억강부약’을 통한 공정성이나 아마르티아 센의 ‘부정의 비판’에 근거한 피지배 계층의 관점을 말한다.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관찰 역시 적극적인 헌신과는 거리가 멀다. 공식적 권위에 대해서는 맹목적으로, 진정으로 보도할 가치가 있는 영역은 오히려 공백으로 비워둠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 열정 없는 저널리즘은 객관적이지 않은 저널리즘 못지않게 문제가 많다. 이상적인 저널리즘은 단단하면서 ‘관여’ 높은 보도다. (지금 한국 언론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언론 전체의 관행과 패러다임의 변화, 곧 기존의 권력적 취재망에서 탈피해 출처와 관점을 다원화하고 ‘타자’와의 연계도 늘리는 적극적 객관성, 곧 실용주의적 객관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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