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최영희 지음, 조경규 그림/주니어김영사(2017) 에스에프(SF)·판타지·추리 등은 국내의 문학적 전통이 취약하다. 그나마 판타지나 추리물은 번역서라도 활발한 편이지만 에스에프는 마지막까지 시장성이 불투명한 장르였다. 한데 테드 창이나 김초엽의 작품이 화제몰이를 할 만큼 이제 에스에프는 문학 키워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어린이 문학 역시 최영희, 오하림, 이희영, 전수경 등이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쓴 작품들이 잇달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중에서도 꾸준히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에스에프를 발표해온 최영희 작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첫 키스는 엘프와> <꽃 달고 살아남기> 같은 초기작에서 그 맹아가 엿보이던 에스에프 마니아의 기질이 최근 작품 속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에스에프는 거대한 스케일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작가가 직조한 세계관 속에서 우주적 경외감을 맛보는 특유의 매력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에스에프를 충분히 즐기려면 초등 고학년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영희의 <인간만 골라골라 풀>은 중학년 정도의 어린이들도 만만하게 에스에프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인간만 골라골라 풀>은 엄마의 뒤집개를 무서워하고 카드 모으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던 평범한 소년 풍이가 지구를 지키게 된 이야기다. 물론 혼자가 아니라 박탄도 할아버지가 기르는 염소 그리고 노트를 들고 다니는 6학년 도아리 누나와 힘을 합쳐 이뤄낸 일이다. 시작은 엉뚱했다. 까치문구 김 사장 할머니가 풍이에게 ‘세상이 홀딱 망할 징조가 나타나거든 구슬목걸이를 걸고 싸우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알고 보니 외계인들이 가장 사악한 포식자인 인류를 지구에서 몰아내기 위해 인간의 수를 줄일 천적 식물을 만들었던 것이다. 김 사장 할머니는 외계인의 지구 정착을 도운 전직 연구원이었지만 진실을 안 후 인간과 동물이 소통할 수 있는 동물 언어 번역기를 개발하고 풍이에게 남겼다. 한편 지구에서는 외계인들이 만든 거대한 검은 풀, 바로 ‘인간만 골라골라 풀’이 나타나 사람을 공격하고 전 세계는 위기에 처한다. 인간과 동물의 공생, 환경 문제 같은 거시적 주제들을 담았지만 동화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엉뚱함과 유머다. 김 사장 할머니가 풍이에게 남긴 ‘동물언어 번역기’는 유치찬란한 분홍색 시크릿 코코 목걸이다. 아무리 지구를 지켜야 해도 열 살 풍이로서는 “샤르릉, 새르르르릉! 이제 넌 공주란다”라는 소리가 나는 왕구슬 목걸이를 마다할 수밖에 없다. 또 지구의 운명을 짊어진 박사가 몸뻬 바지를 입은 할머니인 점도 성역할을 전복하는 설정이다. 외계인을 설득하는 데 도움을 준 풍이의 절친 한수는 ‘수학을 조금 못하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수학을 꼴도 보기 싫어하는 아이’로 만드는 스파르타 학원에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동화는 에스에프 장르답게 재미를 전진 배치한다. 재미가 있어야 아이들이 읽을 것이고 그래야 지구도 지킬 것이 아닌가. 지구를 망가뜨리는 것이 어른이라면, 미래의 지구를 지킬 사람은 어린이뿐이니까. 초 3~4학년.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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