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 징비록> 제1권 표지. 김시덕 교수 제공
1945년 히로시마 원폭투하 때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징비록>의 첫 일본어 번역본 <통속 징비록>(1783)이 7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인문한국(HK)교수는 최근 <통속 징비록>의 원본을 촬영한 파일을 입수해 이와 관련해 작성한 논문 ‘히로시마시립도서관본 ‘통속 징비록’에 대하여’를 2일 <한겨레>에 공개했다.
<징비록>은 서애 류성룡이 1604년까지 임진왜란의 비극을 한문으로 기록한 것인데, 이후 일본에선 17세기에 일본어 훈점(한자 뜻을 일본어로 적은 것)을 붙인 <이칭일본전>(1693), <조선 징비록>(1695)이 잇따라 출간됐다. <통속 징비록>은 히로시마의 유학자 가네코 다다토미가 번주 아사노 시게아키라의 명령에 따라 완역한 것으로 ‘통속’은 당시 한문의 일본어 번역물에 붙이는 표현이었다. 김 교수는 “19세기 말의 한글본 <광명번역징비록>보다 100년 빨리 발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속 징비록>은 조선의 <징비록>엔 없었던 조선의 지도까지 실었으며 번역자 가네코 다다토미는 발문에서 “나라를 다스릴 때 전쟁을 잊고 편안할 때 어려운 시기를 잊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적었다.
<통속 징비록> 제1권에 실린 조선 지도. 본디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엔 없던 것으로, 당시 일본인들이 한국의 지리에 높은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김시덕 교수 제공
아사노 가문은 이후 <통속 징비록>을 비롯해 소장도서 9만책을 히로시마시립도서관에 기증했다. 1971년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이 간행한 사료를 보면, 도서관은 원자폭탄이 떨어진 8월6일 아사노 가문의 특별도서 1만점을 옮기려고 현관에 쌓아뒀는데 트럭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불타버렸다고 기록돼 있다. 이보다 며칠 전 다른 곳으로 옮긴 귀중본 등 9000점 역시 다음달 수재로 대부분 소실됐다고 한다.
그러나 2015년 도서관이 ‘아사노문고’ 목록을 다시 정리하면서 <통속 징비록>을 포함해 아사노문고 책 일부가 기적적으로 외부에 반출돼 현존하고 있음이 알려졌고, 김 교수가 지난달 초 일본 방위대학교의 이노우에 야스시 교수한테서 히로시마시립도서관에 있는 <통속 징비록> 전체 촬영본을 받아 논문을 썼다. 김 교수는 “<징비록>이 조선 한글본보다 100년 빨리 일본어로 번역됐다는 것은 이웃나라의 역사와 정세에 관심이 높았던 일본 사회에 <징비록>이 이미 고전으로 정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6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규장각 금요시민강좌'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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