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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하멜 따라 나선 ‘조선 소년’ 상상하며 8년간 모험 즐겼지요”

등록 2019-11-17 20:13수정 2019-11-18 02:35

[짬] ‘나는 바람이다’ 끝낸 김남중 동화작가

<나는 바람이다> 동화 시리즈를 8년만에 완간한 김남중 작가가 지난 1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했다.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나는 바람이다> 동화 시리즈를 8년만에 완간한 김남중 작가가 지난 1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했다.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폭 익은 갓김치처럼 목소리가 칼칼했다. 감기냐고 물었더니 이틀 동안 학교 네군데에서 강의를 해서 그렇다고 했다. 자신이 어릴 적 그러했듯, 책에 나온 장면을 머릿 속에 좌르륵 떠올리는 아이들, 꿈에서 주인공을 만나는 아이들을 만나면 설렌다고 했다. 목이 쉬어도 괜찮으니, 아이들과 뒹굴뒹굴 누워 밤 새워가며 책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도 했다. 남도 소년 해풍이의 모험을 다룬 <나는 바람이다>(비룡소) 11권을 8년 만에 완간하고, ‘시원섭섭하게’ 해풍이를 떠나보낸 김남중(47) 작가를 12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주인공 ‘해풍이’ 이야기 11권 완간

2011년 나가사키 범선축제 때 구상

‘귀국하는 하멜과 함께 너른 세상으로’

네덜란드·쿠바·멕시코 등등 답사

17세기 열강들 각축 배경 ‘인물’ 창조

“주고받으며 사는 ‘균형감’ 전하고자”

&lt;나는 바람이&gt; 11권을 들어 보이는 김남중 작가. 사진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나는 바람이> 11권을 들어 보이는 김남중 작가. 사진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김남중이 해풍이의 이야기를 구상한 것은 2011년 국제범선축제가 열린 일본 나가사키에서 비롯됐다. 한 재일동포로부터 ‘나가사키는 하멜이 거쳐간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스페르베르(‘새매’라는 뜻)호를 타고 일본으로 가다가 제주도 용머리해안 인근에 좌초한 하멜은 13년간 조선에 억류돼 있다가 천신만고 끝에 나가사키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때 조선은 외부세계에 빗장을 꽁꽁 걸어잠갔던 쇄국의 시기. 그는 답답한 조선을 떠나 하멜과 함께 바람에 몸을 맡기고 너른 세상을 만나는 ‘조선의 소년’을 상상해봤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주인공 해풍이는 하멜 일행과 어쩌다 인연이 닿아 일본,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멕시코, 쿠바를 거치는 대모험을 떠난다.

광주항쟁을 다룬 <기찻길 옆 동네>(2004), <연이동 원령전>(2012) 등 역사적 소재를 정면에서 응시해온 그는 “현실의 질감을 그대로 담은 돌직구보다는 ‘모험’을 빌어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만한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해적, 유령선, 아기자기한 러브 스토리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재료를 듬뿍 골라 쓴 것도 그런 이유다.

동화적 요소가 살아 있지만 작가가 선택한 시대적 배경은 엄혹하다. 해풍이가 살았던 17세기는 대항해의 시대가 끝나고 유럽열강이 식민지 점령에 각축을 벌이기 시작한 때였다. 대포와 총으로 무장한 영국·스페인·네델란드의 상인들이 전세계 바다를 누비며 강제로 무역항로를 열었고, 이미 식민지로 전락한 아시아 일부 지역에선 폭력과 압제의 사슬에 신음했으며, 아프리카와 북남미·유럽을 잇는 노예무역은 기승을 부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50여명의 인물들은 이런 시대적 맥락에 촘촘히 놓여 수탈과 차별의 세계를 살아낸다. 작가는 “구한말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이름없는 의병들처럼, 항상 보통 사람들이 일궈내는 역사를 쓰고 싶었다. <나는 바람이다>에서 다룬 세계사도 그런 시선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김남중은 그런 보통사람들의 공간에 구체성과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일본, 인도네시아, 암스테르담, 쿠바, 멕시코 등지로 여러차례 답사를 다녀왔다.

이 작품에서 특이한 점은, 등장 인물들이 무작정 선의나 정의로운 의지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녹록지 않은 세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은 나눔과 베품의 미덕에 기대기보단 자신이 가진 것과 타인이 가진 것을 주고받으면서, 즉 ‘거래’를 통해 삶을 견딘다. 해풍이는 위기에 처하거나 중요한 선택을 해야할 때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또 그걸 지렛대로 상대에게 얼마나 요구할 수 있을지 헤아려본다.

작가는 특히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하멜을 통해 ‘상인정신’을 제대로 그려낸다. 하멜은 조난으로 인해 못 받은 10여년치 월급을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고 이를 받아낼 때까지 ‘밀당’을 벌이며 급여투쟁에 성공한다. 자신을 동정하는 여론을 일으키기 위해 출판용 보고서도 따로 작성해둘 만큼 치밀하다. 그는 “거저 가져가면 강탈이고 그저 내주면 호구가 된다. 내가 가진 것과 네가 가진 것을 맞받아가는 그 균형감을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며 “해적도 상인도 노예사냥꾼도 군인도 모두 각자의 진심이 있다. 그 진심과 진심의 충돌을 보여주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위적, 전형적인 설정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김남중은 11권을 맺으며 이렇게 썼다. “예전엔 동해바다가 세상의 끝인 줄 알았다.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사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춥고 배고파서 돌아서곤 했다. 해풍이와 함께 모험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해풍이의 심정을 빌려 말한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가 본 사람과 가 보지 않은 사람이다. 가 본 사람은 후회하지 않고 가 보지 않은 사람은 후회한다. 해풍이는 후회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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