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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술술 읽히지만 읽기 쉽지 않은 이유

등록 2019-10-25 06:02수정 2019-10-25 10:28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

김미희 지음/글항아리·1만3000원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읽기가 쉽지 않았다. 술술 읽혔지만 속도는 나지 않았다. “애인이자 친구, 가족, 선배였던”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단둘이 남은 이가 쓴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다. 책장을 펼치자 선입견은 깨졌다. 글은 담담하다. 뜻밖의 담담함이 마음을 흔들어 종종 생각에 잠기게 했다. 속독은 불가능했다.

글쓴이는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림은 글을 그대로 빼닮았다. 그림 속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담담하고 가끔 가볍게 미소 지을 뿐이다. 글이 일상을 담아 담담하듯, 그림 역시 과장이나 꾸밈 없이 슬픔과 기쁨, 낙담과 희망을 담아냈다.

“긴 울음이었구나.” 작가는 책을 받아보고 이렇게 생각했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남편의 장례식 때 흘리지 못한 눈물을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글쓰기로 흘렸나 보다”라고. 이 책의 가제는 <아주 가끔 반짝이고 좋은 순간들>이었다고도 했다. 사람이 마냥 눈물만 흘리고 슬픔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반짝이는 순간이 살아가게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하면, “희망 없이 끝없어 보이는 컴컴한 터널”을 묵묵히 걸어가는 일이 더 많다. 크고 작은 절망과 고통을 관통하며 한없이 ‘다짐’하는 것이, 다짐하며 무엇이든 써내려가는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매일 몇 줄이라도 썼다”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아득한 슬픔으로, 더욱 깊이 다가왔다.

“지난 14년 동안 내 애인, 남편, 하율이 아빠, 친구, 가족, 선배, 박현수”였던 이는 암 발병 2년2개월 만에 작가의 곁을 떠났다. 하율이를 목마 태워 손잡은 고 박현수씨의 뒷모습 그림이 책을 덮고도 지워지지 않는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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