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新택리지-제주·북한
신정일 지음/쌤앤파커스·각 1만9500원
내외국인을 포함해 연간 14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명소 제주. 지금은 너도나도 ‘한 달 살이’를 꿈꾸는 환상의 섬이 됐지만, 조선시대 때만 해도 이곳엔 호시탐탐 떠날 기회를 노리는 토박이들을 막기 위한 ‘출륙금지령’이 있었다.
“현대판 김정호”(김용택 시인)라 불리는 문화사학자 신정일이 제주의 지리와 설화·전설, 그리고 역사적 사건들을 사람 얘기와 고루 버무려 한권의 책으로 내놨다. 30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의 다섯번째 편. 기존에 출간했던 시리즈에 새 내용을 보강해 네번째 편 ‘북한’과 함께 내놨다.
책은 제주의 다채로운 속살을 파고든다. 흉년 때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을 구휼한 것으로 알려진 제주 ‘거상’ 김만덕에 대해 당시 사람들이 “품성이 음흉하고 인색해 돈을 보고 따랐다가 돈이 다하면 떠나는데 문득 그 입은 바지저고리까지 빼앗으니 가지고 있는 남자의 바지저고리가 수백 벌”이었다고 뒷담화(조선 후기 문신 심노숭의 기록)했다는 것 등 그 옛날의 소문까지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 속에는 길에서 깨친 이치들도 군데군데 드러난다. 제주에서 지은이를 엄청 헷갈리게 만들었던 “폭삭 속았수다”(‘수고했다’는 뜻의 방언)란 말이 강원도 삼척에서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관동대로 촬영 도중 알게되는 식이다. 지은이는 해녀들이 삼척으로 이주하며 옮긴 말이 아닐까 추측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끼게 된다’ 하니, 이 책을 읽은 뒤 다시 찾게 될 제주는 전과 사뭇 달리 다가올 듯하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