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창비·1만4000원
장류진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의 표지엔 표제작에 나오는 인물들이 함께 걷는 육교가 그려져 있다.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게 하지 않고 도로와 평행하게 놓인 육교에서 그들은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라면 “한 번씩 올려다보게 되는”(56쪽) 한 회사 사옥의 뻥 뚫린 공간으로 네모난 하늘을 바라본다. 중고거래 앱을 개발해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는 ‘나’가 회장의 부당한 지시로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된 일을 겪은 ‘거북이 알’과 같이 걸어 오르는 육교는 이 소설집을 펼쳐 든 독자들에게도 동일하게 기능한다. 길을 건너지르는 원래의 구실은 못 해도 나와 다를 바 없는 소설 속 인물의 ‘일의 기쁨과 슬픔’ 혹은 ‘삶의 기쁨과 슬픔’을 만나는 작은 동산을 하나 올랐다 내려오게 한다.
작가는 얼핏 사소하게 치부돼도 매 순간 삶에서 난제가 되는 일들을 세심하게 그려내는데, 소설의 인물들과 같은 세대인 20~30대 직장인이나 청년세대에게 가독성이 높을 작품이 포진해 있다. 결혼을 앞두고 친하지 않은 회사 동기에게 청첩장을 주는 일을 놓고 관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잘 살겠습니다’)하거나, 결혼 7년 만에 자기 집을 가진 맞벌이 가정의 여성이 가사도우미 때문에 겪는 내적 갈등(‘도움의 손길’)은 남의 이야기라고만 볼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라고 묻는 남편에게 “응, 난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라고 말하는 ‘잘 살겠습니다’의 화자의 말에 공감하게 되는 건 이 책을 읽는 내내 유효하다. 이해할 수 없는 타인 때문에 애면글면하다가도 “빛나 언니는 잘살 수 있을까. 부디 잘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바라거나, 처음과는 달리 마음에 들지 않게 일하는 도우미를 해고하려다가도 다른 데에서 일하게 돼 그만 나오겠다는 아주머니에게 하려던 말을 못 하고 마는 화자의 모습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화자뿐 아니라 화자의 시선에 비친 타인에게도 옳고 그름으로 가를 수 없는 각자의 첨예한 입장이 있어 이야기의 현실감을 높인다.
소설집엔 달콤쌉싸름한 순간을 지나고 있는 청년들을 다룬 작품도 실렸다. 정규직으로는 처음 입사한 ‘나’의 출근길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긴장을 지켜보면서(‘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 마음속 응원을 보내게 된다. 장난스레 만들었다 화제가 된 곡이 아닌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노래로 세상에 나서고 싶은 가난한 뮤지션 ‘장우’가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네가 너여서 좋다”는 눈빛을 보이는 강아지를 두 달 치 레슨비를 털어 데리고 올 땐(‘다소 낮음’)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피디를 꿈꾸다 현실에 발맞춰 살게 된 ‘나’가 6년 전 무심히 지나친 인연을 다시 떠올리고 핀란드 노인에게 전화를 걸 땐(‘탐페레 공항’) 누구나 한 번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서성거렸던 순간을 회상하게 한다.
정이현 소설가는 추천사에서 “기쁨과 슬픔 사이, 미처 명명되지 못한 여러 결의 마음들이 딱딱한 세계의 표면에 부딪혀 기우뚱 미묘히 흔들리는 순간순간을 작가는 기민하고 섬세하게 포착해낸다”고 평했다.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가 1년 만에 내보인 첫 소설집엔 등단작 ‘일의 기쁨과 슬픔’을 포함해 8편의 단편이 담겼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내가 만든 이야기들은 나보다 씩씩하고 멀리 간다”고 밝혔는데, 그의 말처럼 책장을 덮고 나면 단단히 이 세계에 발 디디고 있되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수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며 나아가는 젊은 그들이 오롯이 남는다. 세상의 비정함과 불공정함, 부당함이 소설 곳곳에 드러나 있지만 그들은 ‘기쁨’과 ‘슬픔’을 양손에 쥐고 전진한다. 머리 위에 핀 조명을 켜두고, 자신을 둘러싼 동그마한 불빛 아래에서 씩씩한 걸음을 내디디며.
강경은 기자 free192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