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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노벨상 특수 잡아라’ 출판계도 함께 ‘들썩’

등록 2019-10-10 20:25수정 2019-10-10 21:53

1960~70년대엔 먼저 출판하는 곳이 ‘임자’
나름 ”자정” 목소리 나와 출판사끼리 추첨도

출판사는 수상 유력후보 소개하고 온라인 투표
인쇄소는 용지 재고 체크하고 밤샘 작업까지
2018년과 2019년 노벨 문학상의 영예는 폴란드와 오스트리아의 작가에게 각각 돌아갔다
2018년과 2019년 노벨 문학상의 영예는 폴란드와 오스트리아의 작가에게 각각 돌아갔다
노벨문학상 발표는 문학·출판계에서 가장 큰 연중행사로 꼽힌다. 이런 ‘특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출판사만이 아니라 서점, 인쇄소, 출판기획대행사까지 출판계 전체가 들썩인다.

10일 한국의 1세대 번역가로 꼽히는 안정효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판권이 없던 시절엔 아무 데서나 먼저 출판하는 게 임자였다”며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책 한권을 서너개로 쪼개 여러 번역자가 들러붙어 한국어로 옮겼다”고 했다. 밤새워 번역하면 제작에 시간이 더 걸리는 활판인쇄 시절에도 한달 정도면 책이 뚝딱 나왔다고 한다. 한국이 세계저작권협약(UCC)에 가입하기 이전까지는 외국인 출판물의 저작권 보호 개념이 희박했다. 한국은 1987년 7월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협약 발효일인 같은 해 10월1일 이후 공표된 외국인 저작물만 보호 대상이었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 이후로 소급 보호가 의무화됐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1970~80년대에는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에 너무 많은 출판사에서 수상작을 동시에 번역해 내니까 나름 자정을 한다고 출판사들끼리 모여서 추첨을 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출판사와 온라인서점에선 발표 전부터 여러 이벤트 등으로 노벨문학상 분위기를 달구기 시작했다. 민음사에서는 유튜브 방송 ‘민음사티브이(TV)’에 지난 7일 편집자가 진행한 ‘올해는 누가 탈까? 당신이 알고 싶었던 노벨문학상의 모든 것’이란 제목의 방송을 올리고, 댓글로 수상자를 맞힌 한 사람에게 41권짜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세트를 주는 행사를 했다. 문학동네는 페이스북 등에 수상 유력 후보로 점쳐지는 이스마일 카다레, 무라카미 하루키, 조이스 캐럴 오츠 등 작품 보유 작가들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은 노벨문학상 수상 예상 작가들을 묻는 온라인 투표를 진행해 당첨자에게 적립금을 주는 행사를 기획했다.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의 책을 보유한 출판사들은 바빠진다. 적게는 1만부에서 수만부까지 며칠 안에 급증할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수다. 출판사는 미리 종이를 제작하는 지업사와 인쇄소에 ‘가발주’를 넣어둔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을 알리는 띠지도 디자인해둔다. 상을 받는 것으로 확정되면 서점에 이미 납품된 책에 일일이 손으로 두를 띠지를 따로 배포하기도 해야 한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이 번역된 경우 수상 직후 온라인서점에서 바로 묶음판매를 할 수 있도록 미리 이야기해놓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박여영 민음사 해외문학팀 부장은 “10일 오후 현재 우리가 작품을 보유한 작가 중에 수상자로 거론되는 작가가 네다섯 사람 돼서 지금 편집부와 마케팅부, 미술부에 대표이사까지 대기하는 중”이라면서 “번역 원고가 들어와 있는 작가가 물망에 올라 있는데, 상을 받게 되면 바로 예약판매를 건 다음 밤새워 출간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노벨문학상 베팅사이트에서 발표 당일 오전까지 1위를 놓지 않고 있던 캐나다 작가 앤 카슨의 작품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번역해둔 한겨레출판의 김수영 본부장은 “카슨은 작품 세계가 아주 대중적인 편은 아니라서, 수상을 하면 일단 1만부가량 주말 중에 추가로 인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쇄소도 분주하게 돌아간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인쇄제본 업체인 영신사의 문정훈 영업팀장은 “올해 우리가 인쇄해온 문학동네와 한겨레출판사의 수상 가능작들은 미리 용지 재고량을 확인하고, 오타 등 수정 데이터를 반영해뒀다”면서 “최근에는 일요일 근무가 많이 줄었는데,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는 예외다. 내일부터 주말 동안 24시간 2교대로 작업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만약 작품을 보유하지 않은 작가가 상을 받더라도 게임은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는 출판기획대행사(에이전시)의 시간이다. 수상 작가의 미번역 작품을 출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같은 경우 당시에 대표작이 한권밖에 번역이 안 된 상태여서 발표 직후 뜨거운 출간 경쟁이 벌어졌다. 수상작 발표 다음날께 대행사들은 미번역 작품 번역 계약을 진행해주겠다는 전자우편을 출판사들에 돌린다. 유력 문학 출판사들은 회의를 열어서 어떤 작품을 번역하고, 선인세를 얼마나 제안할지 검토한다. 예전엔 보통 노벨문학상 발표 기간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과 겹쳐서, 발표가 나면 저작권을 가진 출판사 부스에 대행사 직원들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홍순철 비시(BC)에이전시 대표는 “발표 직후에 판권 문의를 해오는 출판사들의 연락이 폭주한다”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작은 반짝 특수를 누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팔려나가기 때문에 선인세를 5만~10만달러(6천만~1억2천만원)까지 부른다”라고 말했다.

김지훈 이주현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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