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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안 그래도 경쟁 극심한데 ‘생존경쟁’이란 말 써야할까요”

등록 2019-10-08 11:19수정 2019-10-08 20:13

‘종의 기원 톺아보기’ 쓴 신현철 순천향대 교수
2200개 주석 달아 번역…“아직 다 이해 못했다”

“오역·정본 번역 논쟁 벌어지는 것 이해 안돼
다양한 관점으로 옮겨야 실체에 가까워져”
신 교수는 “원래 60살이 넘으면 번역을 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나중에 번역을 고칠 시간이 허락되지 않을 것 같아서 지금 내고 퇴임할 때까지 계속 고쳐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mg9@hani.co.kr
신 교수는 “원래 60살이 넘으면 번역을 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나중에 번역을 고칠 시간이 허락되지 않을 것 같아서 지금 내고 퇴임할 때까지 계속 고쳐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mg9@hani.co.kr
“우리나라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완벽하게 읽은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생명과학을 전공한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누가 이런 어려운 책을 대학생 필독서로 선정했는지 모르겠어요. 추천한 교수 본인들은 제대로 읽었을까요?”

여러 번역본이 있는 ‘고전’을 새롭게 옮긴 사람이라면 응당 자기 번역이 ‘정본’이라 내세우면서 전문성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4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과학자답게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는데 스스럼 없었다. 신현철 순천향대학교 교수(생명시스템학과)는 최근 다윈의 <종의 기원>을 번역하고 직접 2200개의 주석을 단 <종의 기원 톺아보기>(소명출판)를 출간했다. 앞서 지난 7월 나온 진화학자 장대익 서울대 교수의 번역본과 함께, 우리말 <종의 기원>에서 독자들이 느꼈던 목마름이 이제야 해결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저는 지금도 이 책에서 완전하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아요. 당시의 생물학 용어와 지식이 지금과 다르고, 다윈은 또 다르게 썼거든요. 예를 들어 다윈은 ‘모든 종의 기원은 하나’라고 했는데, 개에 대해서만은 ‘여러 종에서 기원했을 것’이라고 썼어요. 저는 이 대목을 해설하면서 ‘다윈이 실수한 것 같다’고 평했어요. 영어 주석본을 봐도 이런 대목들을 그냥 지나가는 걸 보면, 서구학계에서도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신 교수는 “다윈이 쓴 <종의 기원>은 본래 참고문헌도 달려 있지 않은 요약본입니다. 다윈이 월리스라는 연구자가 쓴 자기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논문을 보고 급하게 출간을 진행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죠”라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mg9@hani.co.kr
신 교수는 “다윈이 쓴 <종의 기원>은 본래 참고문헌도 달려 있지 않은 요약본입니다. 다윈이 월리스라는 연구자가 쓴 자기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논문을 보고 급하게 출간을 진행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죠”라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mg9@hani.co.kr
신 교수가 방대한 분량의 주석을 단 것은 이런 생각 때문이다. 한마디로 “주석이 없으면 읽을 수 없는 책”이라는 것. 그가 1984년 서울대 식물학과 대학원에서 후배들과 함께 <종의 기원>을 읽었을 때부터 느꼈던 점이었다. 당시 번역본은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긴 데다 오역으로 점철됐기에 사정은 더 심했다. 그 시절 그는 ‘예순이 넘으면 직접 번역을 해보자’고 훗날을 기약했다고 한다.

그렇게 회갑을 바라보는 2017년 여름방학부터 번역을 시작했고, 지난해 연구년을 맞아 올곧이 작업에 집중했다. 여행 한 번 가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종의 기원> 역주 작업에 매달렸다. 1판부터 6판까지 모든 판본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다윈이 주고받은 편지, 다윈의 다른 저서, 영어판 주석 등 여러 자료를 참고해가며 한 줄 한 줄 번역해나갔다. 독자들이 혼자서도 읽어나갈 수 있도록 강독 수업을 하는 것 같은 꼼꼼한 주석을 달고, 책 말미엔 요약 노트까지 실었다. “번역은 제 60살 회갑을 자축하는 의미도 있어요. 예전엔 교수들 회갑논문집 같은 걸 내곤 했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졌잖아요. 학자로서 쉼표를 찍었다고 할까요? 굉장히 뿌듯합니다. 아직 우리말 다윈 전집이 없어서 번역해볼까 잠깐 생각을 하긴 했는데, 너무 고생해서 또 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허허허.”

4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신현철 순천향대 교수는 “인문학에선 고전을 읽잖아요. 사상의 변화를 찾아보고 지금 어떻게 접목할까 생각하기 위해서죠. 사실 과학도 그렇거든요. 과학계에서 고전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mg9@hani.co.kr
4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신현철 순천향대 교수는 “인문학에선 고전을 읽잖아요. 사상의 변화를 찾아보고 지금 어떻게 접목할까 생각하기 위해서죠. 사실 과학도 그렇거든요. 과학계에서 고전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mg9@hani.co.kr
식물분류학자인 그에게 ‘전공이 번역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 같냐’고 묻자 매우 흥미로운 답이 돌아왔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쓴 ‘struggle for existence’를 대개 ‘생존경쟁’이라고 번역해왔잖아요. 아마 일본어로 옮긴 개념을 그대로 갖다 쓴 것 같아요. 그 뒤에 몇 사람이 ‘생존투쟁’으로 번역했는데,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지난 7월에 낸 <종의 기원>에서도 이 번역어를 사용했어요. 경쟁은 남을 이기는 건데, 투쟁은 남을 쳐서 이기는 거잖아요. 더 강하게 번역한 거죠. 저는 우리 사회가 이미 과도한 경쟁사회인데 그런 식으로 번역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떻게 옮길지 꼬박 한 달을 고민하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번역했죠.”

같은 말을 번역하는데도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동물학자와 식물학자가 서로 공부한 게 달라서지 않을까요. 평소에 동물학자들과 이야기해보면 공격적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아무래도 동물은 다른 동물을 먹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식물이 경쟁한다고 하면 우습잖아요. 식물은 자기 자리에서 몸부림쳐서 살아남으면 돼요. 서로 자리가 다르고 역할이 다르니 싸울 일이 없죠. 번역도 그래요. 저는 오역·정본 논쟁이 벌어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관점에서 번역이 이뤄져야 실체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신현철 순천향대 교수가 번역하고 주석을 단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톺아보기> 표지. 소명출판 제공
신현철 순천향대 교수가 번역하고 주석을 단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톺아보기> 표지. 소명출판 제공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처럼 현대적으로 진화론을 해석·발전시킨 책들도 많이 있는데, 굳이 출간된 지 160년이나 됐고 내용도 어려운 <종의 기원>을 지금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다윈이 활동한 당시에는 생물학 이외 분양에서는 지동설이 받아들여지는 등 근대 과학혁명이 일어났어요. 하지만 생물학계는 여전히 중세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신이 있다는 전제에서 생명을 설명하려고 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비로소 다윈이 생물학에서도 신의 존재를 제거하는 근대 과학 혁명을 완수한 거죠. 우리가 <종의 기원>을 제대로 읽는다면 다윈의 혁명적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혁명의 배경을 정확하게 알아야만 혁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또 다른 사고를 할 수 있듯이, <종의 기원>을 토대로 삼아 또 다른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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