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시집 박정섭 지음/사계절·1만3000원
똥시집. 세상에 이런 시집이 있을까. 불순한 냄새에 끌려 책을 잡았다면 ‘기똥찬 똥시’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 책. 시집이라 한정 짓기가 아쉽다. 유쾌한 일상을 그린 시뿐이랴. 만화, 일러스트, 곡을 붙인 노래시, 시로 만든 보드게임 등 시와 결합된 아트워크로 상상력과 재미를 증폭시킨다. ‘독자 참여형’ 종합예술 실험시랄까?
박정섭. 만화가, 일러스트 작가, 보드게임 제작자, 피규어 제작자, 작곡가, 우쿨렐레 연주자, 그림책 작가…. 그를 일컫는 직함이다. 이 다기한 재능을 6년간 똥시집에 쏟아부었다. 12년간 100권도 넘는 그림책 작업을 한 그는 특히 <감기 걸린 물고기>(2016)로 사랑받고 있다.
“제 일상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저를 거쳐 또다른 결과물로 태어나는 거죠.” 똥모자를 쓰고 우쿨렐레를 멘 박 작가는 만화로 똥시의 황금레시피와 똥시 잘 누는 법을 소개하며 책의 서막을 연다. 똥시의 첫 관문은 ‘똥시 왈츠’ 듣기. 큐아르코드로 인식하면 경쾌한 우쿨렐레 연주가 흐른다.
똥시 주인공은 너무 평범해서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다. 꾸역꾸역 먹어야만 하는 ‘배부른 쓰레기통’, 놀이터 시시티브이 거미줄에 착안한 ‘거미방송’, 삶다가 잊어버려 다 타버리기 직전의 ‘깡패 고구마’ 등의 소심한 반란에 웃음이 터진다. 또한 16쪽에 걸쳐 써진 ‘노총각 아저씨’나 12쪽에 달하는 ‘자라지 않는 나무’는 시 한편이 그림책 한 권이라 해도 손색없을 메시지와 감동을 담고 있다. 틀린 그림 찾기가 있는 ‘콧구멍 터널’, 미로 탈출게임을 설치한 ‘바퀴벌레’. 작가가 직접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부른 노래 영상과 악보, 음원까지, 활자를 벗어난 ‘똥시’의 무한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권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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