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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억압된 소비에트 일상의 신화를 발굴하며

등록 2019-09-27 06:00수정 2019-09-27 20:30

공통의 장소-러시아, 일상의 신화들
스베틀라나 보임 지음, 김민아 옮김/그린비·2만5000원

1950년대 초 스탈린 시대 가정의 행복을 그린 락티오노프의 <새 아파트>가 전시되었을 때, 그림 한켠에 그려진 고무나무는 비평가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공동주택 코무날카의 한 귀퉁이에 있는 고무나무는 부르주아의 온실에나 있는 반혁명적인 화초로 간주되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적인 가정의 행복을 보여주는 이미지의 도상적 흠이자 그림 속에 극히 드물게 존재하는, 실제에 가까운 사물들 중의 하나인 이 고무나무는 문화적 기억을 소환하는 방아쇠로, 소비에트의 사적인 삶과 공동의 삶의 문을 여는 고고학적 열쇠로 작용한다.”

흐루쇼프의 동상과 사진작가의 그림자. 사진 스베틀라나 보임. 그린비 제공
흐루쇼프의 동상과 사진작가의 그림자. 사진 스베틀라나 보임. 그린비 제공
<공통의 장소>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코무날카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선택한 옛소련 출신 망명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스베틀라나 보임(1959~2015)이 비교문화적 시각에서 쓴 책이다. 하버드대 교수였던 보임은 1925년 발터 베냐민의 모스크바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미국 관광객의 신분으로 고국을 방문하여 러시아와 소비에트의 문화신화, 내셔널 드림, 일상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사색하고 탐구했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시공간의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보임은 자신의 사소한 관찰들을 무거운 이론이 아닌 역사적, 문화적 경험과 사실들을 바탕으로 해석한다. 러시아와 소비에트 일상의 문화를 그림과 영화, 농담, 티브이 프로그램, 대중에게 잘 알려진 노래들, 기념품들, 광고 등의 구체적인 예들을 통해 조명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포스트공산주의의 인형들. 1991년. 사진 마크 스테인보크. 그린비 제공
포스트공산주의의 인형들. 1991년. 사진 마크 스테인보크. 그린비 제공
보임에 따르면 ‘일상’(byt)은 소비에트의 공식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러시아의 지적 전통에서 비애국적이고 전복적이며 러시아적이지 않거나 심지어 반소비에트적으로 간주되어 폄하되었다. 보임은 러시아 문화의 희생적 또는 종말론적인 자기 정의 ‘바깥’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것들, 즉 감정의 표현, 의사소통의 방식, 평범한 삶, 집, 물질적 대상과 예술에 대한 태도 등을 논의의 중심으로 가져온다. 한편으로는 다양하고 혼성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익숙하고 친숙한 것으로 드러나는 러시아 문화 전통들, 일상의 신화, 코무날카, 글쓰기광, 포스트코뮤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속에서 예술과 일상의 경험, 국가와 문화, 사회와 개인, 공과 사 사이의 관계 또한 추적한다.

유명한 시인 겸 가수 오쿳자바의 초상화가 있는 개인 전시. 사진 마크 스테인보크. 그린비 제공
유명한 시인 겸 가수 오쿳자바의 초상화가 있는 개인 전시. 사진 마크 스테인보크. 그린비 제공
북극권 근처의 이름 없는 마을. 남자의 티셔츠는 버려진 깃발로 알뜰하게 만들어졌다. 사진 마크 스테인보크. 그린비 제공
북극권 근처의 이름 없는 마을. 남자의 티셔츠는 버려진 깃발로 알뜰하게 만들어졌다. 사진 마크 스테인보크. 그린비 제공
러시아에 정착한 스페인 내전 난민의 자녀이자, 옛소련의 80년대 사람들 중 하나였던 보임은 외부자의 시선으로 러시아 일상의 문화를 낯설게 만든다. “나는 내가 소비에트 러시아의 마지막 세대에 속했기 때문에 전체주의적 타락의 시대, 후기 브레즈네프주의적 회의적 시기에 레닌그라드의 개척자 캠프와 코무날카에서 보낸 나의 아름다운 어린 시절에 대해 무비판적인 향수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익숙함에 대한 갈망과 소원함을 결합시키는 반어에 의해 사유된 향수 장르를 단지 발전시킬 수 있을 뿐인데, 나의 경우에 이것은 익숙한 집단적 억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향수병과 집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 사이에 좋은 균형을 제공하고 이 균형은 문화신화학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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