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지성 팀장의 책거리
명절이 아니면 어른들을 찾아뵙기 어렵습니다. 늘어난 흰 머리카락과 수척해진 얼굴에서 나이 들어감을 보며 안타까워합니다. 저 자신은 나이 든다는 사실을 잘 못 느낍니다. 그러다가 가끔 그걸 느끼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제게는 오래전 읽은 책을 다시 읽는 버릇이 있는데, 몇해 전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그렇게 읽었습니다. 20대 시절의 저를 사로잡은 책입니다. 조르바라는 인물의 원초적 생명력과 자유로운 영혼에 매혹당했습니다. 조르바를 흉내 내며, 돌이켜보면 ‘못된 짓’들도 했었죠. 옛 책은 언젠가 사라져 버려 새로 구입해 읽었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뜨거움과 광기는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입니다. 그럼에도 조르바는 여전히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대학 시절, 같은 하숙방을 쓰던 친구가 수강하는 강좌의 교재 중 하나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구입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그 유명한 철학자는 무슨 말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해 친구의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 펴봤습니다. 곧 질려 버렸죠. 분명히 글자로 쓰였는데, 문장은 딱딱하고 도대체 뭔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얌전하게 책꽂이에 꽂아넣었죠. 그러다 2년 전 이 책을 폈을 때는 저도 모르게 빠져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은 것으로 얘기하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는 어떤 것인지 탐구합니다. ‘행복’ 또는 ‘잘 삶’으로 번역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사상도 담겨 있죠. 좀 더 일찍 이 책을 만났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나이 듦에 따라 다가오는 책도 다른가 봅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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