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아크-사진으로 엮은 생명의 방주
조엘 사토리 지음, 권기호 옮김/사이언스북스·3만원
사진집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이어간다. 왜 이렇게까지 화려한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색,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보는 듯한 표정과 눈빛, 우아한 자태를 한 생명들. 그 황홀함에 취할수록 한가지 깨달음이 가슴을 때린다. 지금 보는 것은 마치 범죄 피해자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린 지금 대체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 Joel Sartore / Photo Ark 사이언스북스 제공
2005년 추수 감사절 전날, 당시 조엘 사토리는 25년 넘게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일해온 사진작가였다. 몇주에서 몇달씩, 남극에서 열대 우림으로 온 대륙을 넘나들며 일하는 것이 그에겐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그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아내와 세 아이를 돌보기 위해 그는 집 가까이에 머무는 생활을 하게 됐다. 아내가 조금씩 호전되자, 그는 자신이 해온 일을 돌아보게 됐다. 그동안 열심히 생물 보전을 위해 일한다고 해왔지만, 그로 인한 변화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내가 과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대중이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을까?’
그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다른 기록 작업이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를 기록한 에드워드 커티스와 멸종된 새들의 초상을 그린 존 제임스 오듀본의 작업들. 그는 자신의 집에서 1.6㎞ 떨어진 링컨 어린이 동물원에 전화를 걸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 “사육하는 동물들의 초상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벌거숭이두더지쥐(국제자연보전연맹 범주 상 관심대상)를 시작으로 10년 넘게 동물원을 다니며 동물들을 촬영했다. 이번 달까지 그는 9500여종의 사진을 찍었다. <포토 아크>는 그동안 촬영한 동물 중 400여 멸종 위기종의 사진을 담은 사진집이다. 그의 목표는 죽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포획된 1만2천여 종의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다. 지금 속도라면 1962년생인 그가 70살이 다 되었을 2030년께나 마칠 장기 프로젝트다.
맨드릴. 미국 텍사스주 브라운스빌 글래디스포터 동물원. 국제자연보전연맹 범주 상 취약. ⓒ Joel Sartore / Photo Ark 사이언스북스 제공
“나는 스스로를 동물 대사(大使), 말 못 하는 자들을 위한 대변인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찍은 사진을, 가급적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 여론을 움직이기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여긴다.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생물을 사람들이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사람들이 이 동물들의 눈을 보고 위태로운 상황을 알게 되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지표면의 모든 것을 거침없이 무자비하게 소비해 한두 세대 안에 수백, 아니 수천 종을 말살시키는 행위를 멈출 수준에 이르지 않을까? 장담할 수 없다. 내가 지금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바로잡지 않으면 미래 세대들은 우리가 지구에 한 짓들을 증오하리라는 점이다.”
그동안 이런 종류의 사진집은 대부분 자신의 서식지에 있는 동물과 곤충 들을 촬영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사진집은 독특하게 사진관 초상 스타일로 촬영했다. 이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꿨다.
이 초상 속 동물들의 눈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그동안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고향을 잃은 난민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프랑스아랑구르(위기) 가족, 파안대소하는 안경솜털오리(준위협), 황금모피를 두르고 귀족 같은 근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황금랑구르(위기), 그 옛날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을 듯한 깊은 비취색의 노란줄야자살무사(관심대상)…. 사진 속 동물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쳐다본다. 그들은 이제 ‘그들’이 아니라 ‘너’와 ‘나’가 된다.
캘리포니아바다사자. 미국 휴스턴동물원. 국제자연보전연맹 범주 상 관심대상. ⓒ Joel Sartore / Photo Ark 사이언스북스 제공
그는 <한겨레>와 진행한 이메일 인터뷰에서도 눈 맞춤을 중요한 편집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는 사진 선정의 기준을 묻는 말에 “내 기준은 동물과 사진을 보는 사람이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사토리가 초상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동물들이 대등해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초상 사진을 통해 생쥐도 북극곰만큼 크고 중요해진다. 그는 “흑백 배경 앞에 따로 있는 동물들은 아주 또렷하게 보여서 그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우아함, 총명함이 눈에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동물 보호를 위해 진행한 작업이니만큼 촬영 과정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는 일단 동물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동물원 내에 촬영 장소를 마련했다. 무독성 페인트를 칠해 검은색 또는 흰색 배경을 만들었다. 천장에 단 조명도 검은 천으로 숨겼다. 촬영 동물 대부분은 평생 인간과 가깝게 지내왔기 때문에 촬영 중에도 차분함을 유지했지만, 촬영은 가급적 빠르게 진행됐다.
얼룩꼬리감기원숭이. ⓒ Joel Sartore / Photo Ark 사이언스북스 제공
그에게 ‘작업을 하며 가장 즐거움을 준 동물’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많은 새가 수다스럽고 쾌활하며 곁에 있을 때 큰 기쁨을 준다. 특히 앵무새가 그렇다. 그렇지만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촬영하기 어려웠던 동물들이다. 침팬지는 굉장히 영리하고 힘이 세며 잽싸기 때문에 그들을 찍는 일은 어렵다. 한 침팬지 무리가 사진 촬영을 위해 세워 둔 종이 배경을 완전히 부수는 영상이 내 웹사이트에 있다. 지금이야 영상을 보며 웃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웃긴 일이 아니었다.”
가장 촬영이 슬펐던 동물은? “파나마에서 온 ‘투기’라는 이름의 외톨이 개구리는 마지막 랩스프린지림드청개구리였다. 그가 죽으면서 이 종은 멸종했다. 이것은 언제나 슬픈 일이지만, 동시에 내게 포토 아크 프로젝트를 쭉 이어 나가서 마칠 수 있도록 큰 영감을 주는 일이다. 내 일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앞으로 계속 해나갈 일이다.”
그는 왜 우리가 이들을 지키는 일에 당장 나서야 하는지 힘주어 말한다. 그것은 이기적인 동기와 예술적 감각이 뒤섞인 다급한 무엇이다. “우리가 다른 생물 종을 구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자연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지만 대개 그것을 깨닫지도 못한다. 건강한 숲과 바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기후, 즉 기온뿐만 아니라 강수량, 태풍의 강도, 대기의 화학적 균형까지 조절한다. 벌, 나비, 파리 같은 꽃가루 매개충은 식량 생산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 인간에게 이로운 이런 종들과 더불어 전 세계의 생물 종을 보호해야 할 더 중대한 이유가 있다. 모든 종은 수천 년 내지 심지어 수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진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각각은 너무나 고유하고 고귀하기에 그것만으로도 보호할 가치가 있다. 모든 생물은 각각 다른 생물과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세계를 풍요롭게 한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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