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바 소벨 지음, 양병찬 옮김/알마·2만3500원 1893년 8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천문학-천체물리학회 모임에서 논문 발표를 위해 연단에 오른 한 여성이 작심한 듯 말하기 시작했다. “여성이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많은 천문학의 경우, 여성 과학자들이 남성 과학자들과 동등하다는 점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여성의 이름은 윌리아미나 플레밍. 하버드 천문대의 핵심 인력이자 항성 분류체계를 설계한 여성 천문학자다. 100여년 전, 유리천장보다 더 높은 ‘유리우주’를 깨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 천문학자들의 이야기가 책 <유리우주>로 묶였다. 별까지의 거리 측정법을 고안하며 허블에게 영향을 준 헨리에타 리비트, 거성과 왜성을 구별할 수 있는 스펙트럼 분류체계를 고안한 안토리아 모리 등 천문학 연구에 헌신한 여성들의 열정과 시행착오, 학문적 성취를 시간순으로 지켜볼 수 있어 밀도 높은 성장 이야기로도 읽힌다. 여성 과학자를 회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천문학 단체들에 대항해 여성과학연구지원협회를 만들고, 여성 천문학자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해 연구자들을 길러내는 이들은 그 자체로 ‘새로운 판’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페미니스트들이다. 보수적인 과학계에서 고군분투하는 100년 전 여성들의 모습은 지금과 다르고, 또 닮았다. “여자들은 안락한 생활을 주장할 수 없으며, 주어진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미덕이라니! 그건 시대에 뒤떨어지는 발상이에요.” 같은 일을 하는 남성보다 자신의 연봉이 적다는 사실을 두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던 플레밍이 현대의 성별 임금 격차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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