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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잘려나간 신체는 누구의 것인가

등록 2019-09-06 06:01수정 2019-09-06 19:34

신체 소유권 부정해온 법의 역사…생명공학 도전으로 곳곳에서 한계
로마법에 기원하는 인격과 몸의 분리, 몸의 소유권 인정으로 돌아가야
도둑맞은 손
장-피에르 보 지음, 김현경 옮김/이음·1만8000원

어떤 사람이 목공 일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한참 나무를 다듬다 맹렬하게 돌아가는 회전톱에 실수로 손이 끼어들어 간다. 기절했다가 잠시 뒤 깨어나 자신의 손을 찾았지만 어느샌가 손은 사라졌다. 그에게 원한을 가지고 복수할 기회만 노리던 원수가 잘린 손을 지하실 보일러 속에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재판에 넘어간다면 어떤 판결이 내려질까. 피해자는 원수의 행동은 신체 훼손을 초래하는 폭력으로 무거운 징역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원수는 무죄로 풀려날 것이다. 최소한 1993년 이전의 프랑스 법학자들의 법 해석에 비춰봤을 때는 말이다.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법인류학과 법의 역사를 가르치는 장피에르 보가 1993년 출간한 <도둑맞은 손>은 이런 가상의 재판 이야기로 시작한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사법적 자문기관인 국무원은 1988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몸이란 곧 인격이다”라고 선언했다. 보가 보기에 이런 법 해석을 따른다면, 손은 절단되어 몸이라는 인격을 벗어나는 순간에야 비로소 물건이 된다. 손은 몸에 붙어 있을 때는 물건이 아니고 주인도 없었기에, 잘린 이후엔 곧바로 주인이 없는 물건(무주물)이 된다. 그 물건을 처음으로 점유한 사람이 물건의 주인이 되니, 원수가 그 손을 불구덩이 속에 던져버려도 아무 잘못이 없는 것이다. 보가 상상해낸 이 가상 재판은 당대 법이론이 처한 난점을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베어낸다.

그래픽 동혜원, 이음출판사 제공·한겨레 자료사진
그래픽 동혜원, 이음출판사 제공·한겨레 자료사진

법 바깥으로 추방된 몸의 귀환

앞의 상상과 비슷한 사건이 실제로 여럿 존재했다. 원수의 동기를 ‘이웃에 대한 증오’에서 ‘30억달러(3조6천억원) 규모의 시장’으로 바꾸어 놓기만 하면 된다. 1976년 존 무어라는 미국 사업가가 있었다. 그가 백혈병이 걸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 비장을 적출하게 됐다. 그의 주치의이자 저명한 암 학자인 데이비드 골디 박사는 이 비장을 연구하다 희귀한 세포를 발견했다. 암세포를 파괴하는 두 종류의 단백질을 찾아낸 것이다. 그는 이를 의약품으로 개발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이 사실을 존 무어가 알게 된 것은 무려 7년이 지난 후였다. 존 무어는 1983년에 골디 박사를 상대로 세포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의사 쪽 변호인단 입장은 손 절도범이 무죄방면될 때의 논리와 매우 비슷했다. “몸에서 떼어낸 것은 더는 인격으로 보호될 수 없다.” 상급심인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이런 연장선상에서 1990년 의사가 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만 인정하고, 존 무어의 세포에 대한 소유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지은이가 보기에 두 상황에서 벌어진 모든 혼란의 근원은 ‘인간에게 자기 몸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몸을 물건으로 인정하면 곧 상품이 되어버리고, 불가피하게 장기매매 같은 거래를 허용하는 길을 트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지은이는 몸이 물건이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단언한다. 이런 법적 단언만이 생명공학이란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현대에 환자의 인격의 존엄성과 신체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을 물건으로 인정하되, 법으로 신체를 거래할 수 없는 물건으로 규정하기만 하면 된다고 본다. 20세기 들어 생명공학은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신체가 인격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 시작은 수혈이었고, 장기이식, 신체이식 등 그 영역은 점점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이렇게 묻는다. “사실 자신의 몸과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소유권에 의해 엄격히 보호받는 것과 몸에서 떨어져 나온 모든 것이 (황금으로 바뀔 수도 있는) 쓰레기로 취급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인간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이겠는가?”

로마인은 어떻게 법에서 몸을 추방했나

지은이는 몸과 인격의 관계가 왜 이렇게 설정되었는지 그 근원을 찾아서 고대의 로마법, 중세의 교회법 등 2천년 법학사 속으로 깊이 잠수해 들어간다. 서구법의 토대를 세운 로마인들은 주체를 인격과 동일시했다. 그 결과 추상적인 인격이 물질인 육체를 대신해버렸다. 법학자들은 몸이라는 성가신 존재를 민법의 바깥으로 추방해버렸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법학이 발전한 지적인 틀은 몸에 대한 깊은 경멸을 품고 있었다. 로마인들의 ‘시빌리테’(도시, 문명, 예의범절, 시민법 등과 연결된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에서 스포츠와 목욕이 핵심에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깨끗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이상적인 몸을 찬양하는 것은 몸이라는 현실을 부인하고 신적인 영혼을 향해 가는 방법이었다. 대신 식량 공급, 위생 관리, 시체 처리 등 몸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공법의 관할 아래로 들어갔다. 제사장과 행정관들의 법이었던 로마 공법의 역할은 이후 중세 교회법이 물려받는다. 이제 몸은 사제와 의사의 관리 아래에 들어갔고, 몸의 신성함은 사제가, 저속함은 의사가 맡는다. 그 뒤에 펼쳐진 근대란 곧 사제가 의사에게 차츰 영토를 빼앗기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번역을 맡은 인류학자 김현경은 이 책의 독창성으로, ‘성스러움’을 인격의 속성이 아닌 물건의 속성으로 본다는 점을 들었다. 지은이는 만약 몸의 성스러움이 몸과 인격의 동일성에서 비롯된다면, 인격이 사라지는 순간 몸은 성스러움을 잃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실제로 주검에는 살아 있는 인간에게는 없는 성스러움이 부여된다. “주검이 성스러운 것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세계의 거대한 성물 사업에서 보듯이 성자의 시체가 물건이기 때문에 신도들은 그 성스러움을 이용할 수 있었다. 주검을 먹음으로써 그 생명력을 차지하고 건강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식인 행위라는 종교적 관습은 그 목적에서 현대의 장기이식 수술과 차이가 없다. 이런 설명은 라틴어에서 ‘사케르’(sacer)란 단어의 독특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단어는 숭배해야 하는 것과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을 동시에 가리킨다. 현대철학의 대가인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인격을 박탈당하고 법의 바깥으로 추방당한 인간을 왜 ‘호모 사케르’, 즉 ‘성스러운 인간’이라고 부르며 철학의 무대 가운데로 소환했는지 그 이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우리도 신체의 소유권 문제 논의 필요”

그렇다면 우리 법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이 책의 감수를 맡은 이준형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아직 한국의 법에선 신체의 소유권 문제를 명확하게 명시하지는 않는다. 사안에 따라 법관들의 판단에 맡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생명과학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상황이라, 섣불리 법률로 규정했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도 이런 상황이 지속하는 이유다.

만약 ‘도둑맞은 손’과 같은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난다면 유죄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법학계에선 절단된 신체 일부의 위치를 알고 있는 제삼자가 이 신체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을 때 처벌할 수 있다고 본다. 신체의 위치를 가르쳐줌으로 인해서 범인의 위협 등 제삼자에게 생길 수 있는 피해가, 가르쳐주지 않음으로 인해 장애 등 피해자가 받는 피해와 비교해 현저하게 낮을 경우에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법에선 사람이 신체에 대한 소유권이 있다고 명시하는 것은 주저하고 있지만, 이런 권리를 인정하는 취지의 판례들이 있다. 그중 유명한 것으로 제사 주재자의 결정방법을 다룬 200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람의 유체·유골은 매장·제사 등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체물로서, 선조의 유체·유골은 제사 주재자에게 승계된다”고 판시한다.

이 교수는 생명공학의 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만큼 생명윤리 문제를 두고 의학, 법학, 사회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위원회를 구성해 법적 기준을 정할 필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본다. 그는 “이 문제를 법관들에게만 맡겨놓는다면 자칫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동떨어진 판결을 내놓을 수 있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기구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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