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문학동네·1만3500원
소설가 김금희는 2009년 신춘문예로 등단해 올해로 만 10년이 되었다. 그는 온라인서점 예스24가 독자 대상 투표를 거쳐 얼마 전 발표한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설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낸 장편 <경애의 마음>을 비롯해 중편 하나, 소설집 둘, 짧은소설(콩트)집 한 권을 내며 성실하게 달려온 그가 최근 세 번째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를 펴냈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는 자전소설 ‘쇼퍼, 미스터리, 픽션’을 비롯해 단편 아홉이 묶였다. 대개 소설집이란 일관된 주제나 소재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 책은 그렇게 한 줄에 꿸 만한 특징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다는 것은 작가가 그만큼 다양한 인물과 상황을 자유자재로 다룰 만한 역량과 자신감을 지녔다는 뜻일 수 있다. 김금희의 소설들은 또한 극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에 의지하지 않고, 흔하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섬세한 감정과 미묘한 관계의 결을 포착하는 데 능하다. 인간과 세계를 깊고 오래 관찰한 데에서 비롯된 내공이라 하겠다.
세 번째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를 낸 작가 김금희. “지난달 초 평생 살아왔던 인천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왔다. 이사 와서 한 달 동안은 위축감도 있고 어색했는데, 이제는 글을 쓰는 단골 카페도 생기고 훨씬 나아졌다”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그의 평판작이자 지난 소설집 표제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는 어긋나는 사랑과 연애의 앙금을 그려 그에게 젊은작가상 대상을 안겼다. 이번 소설집 맨 앞에 실린 두 작품 ‘체스의 모든 것’과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는 일종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체스의 모든 것’에서는 대학 시절 동아리 남자 ‘선배’와 여자 동기인 국화 그리고 역시 여성인 화자 ‘나’가 체스를 사이에 두고 사랑의 줄다리기 또는 숨바꼭질을 한다. 체스를 사이에 두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체스를 둔 것은 국화와 선배이고 나는 그들의 체스(그러니까 연애)를 지켜보며 선배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애써 누르고 감출 따름이다. 연애라고는 해도 그것은 매우 불균등하고 불안한 것이며, 세 주인공을 쥐고 흔드는 것은 연애만이 아니라 청춘의 혼란과 상처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그들은 성장하는 것일 테지만, “선배를 보면서 느꼈던 새로운 감각 같은 건 다 어디로 간 것일까?”라는 화자의 탄식은 그 성장이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수반하는 것이기도 함을 알게 한다.
소설가 김금희.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에서는 커피 전문점 여자 사장이 연하의 남자 종업원 은수를 상대로 “소극적인 짝사랑”을 한다. 사장은 또 다른 종업원인 여성 화자 ‘나’를 증인 겸 조력자로 삼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도움을 구하는데, 그런 둘을 바라보며 조력자로 구실하는 동안 나 또한 “은수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꼈다”는 대목은 이것을 일종의 삼각관계로 볼 수 있게 한다. 소설 말미에서 홀몸인 줄 알았던 은수에게 동거녀가 있는 것을 알게 된 화자는 “이만하면 그래도 나쁘지 않고 무사한 안녕이 아닌가”라며 자신을 포함한 당사자 모두의 안녕을 기원한다.
여중생들 사이의 순수하지만 서툰 사랑을 그린 ‘레이디’, 대학 시절 첫사랑을 십칠 년 만에 재회했다가 다시 헤어진 인물의 이야기인 ‘누구 친구의 류’ 역시 연애의 다양한 측면을 그린 작품들이다. 삼각관계를 다룬 앞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사랑하는 두 사람은 결국 맺어지지 못하고 마는데, ‘누구 친구의 류’의 이런 마지막 문장은 한때의 뜨거운 열정과 아린 상처를 뒤로 하고 평온하지만 지루한 일상을 받아들이는 성숙 또는 투항의 태도를 대변한다 하겠다.
“그렇게 나쁠 것도 좋을 것도 비극도 희극도 없는 얼굴로 노래하는, 그냥 흔한 어느 친구의 류일 뿐이었다.”
소설가 김금희.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금희 소설의 어떤 인물은 읽고 난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너무 한낮의 연애’의 두 주인공이 그러했고, <경애의 마음>의 경애와 상수가 또한 그러했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 가운데에서도 ‘새 보러 간다’의 미술평론가 윤과 ‘문상’의 희극배우, ‘모리와 무라’의 숙부 등이 그런 인물들에 속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문상’의 “우울한 희극배우”가 특히 인상적이다. 그의 부친상을 맞아 대구의 상가에 찾아간 문화재단 직원 ‘송’은 상가를 뛰쳐나온 배우가 이끄는 대로 서문시장이며 앞산공원, 수성못 등을 순례하며 배우의 푸념을 듣는 한편 감춰 두었던 자신의 트라우마와 대면하게 된다.
“자기도 십 년이 지나면 저렇게 되어 있을까, 다시 생각했다. 저렇게 불안하고 우울하게 안정감 없게 외롭게 가진 것 없게 내쳐진 채 나쁘게, 살게 될까”라고 송은 배우를 보며 생각하는데, 배우와 그의 관계가 그처럼 일방적인 우열과 단죄의 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그림자 관계라는 사실을 독자는 알게 된다.
“살아 있다는 것. 진행되지만 실감할 수는 없는 그것을 모멸하고 난폭하게 굴고 싶은 마음.”
‘문상’에서 대구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탄 송은 자살한 조모의 기억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로 이런 마음을 먹는다. 삶을 향한 이런 적대감과 상반되는 태도를 ‘쇼퍼, 미스터리, 픽션’에서 만날 수 있다. 소설가 케이(K)는 지방의 한 대학에서 소설 창작 강의를 마친 뒤 강의를 듣는 학생과 함께 야시장에 갔다가 늙은 여자 노숙인을 보게 되는데, 노숙인의 추레하고 불행한 행색이 그에게는 오히려 생에 대한 무한한 긍정의 징표로 다가온다.
“적어도 여자는 거부하지 않았음을, 살 것을. 최선을 다해 살 것을. 여자가 했다면 자기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지닌 김금희의 소설 세계를 한데 아우르는 메시지를 이런 대목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새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를 낸 작가 김금희.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금희는 “소설집을 묶어 놓고 보니까 인물들 각자가 가진 상처의 고유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쓴 작품들이 아닌가 싶다”며 “인간이란 게 들여다볼수록 신기하고 특별하며 고유한 측면이 있어서 그것을 발굴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러면 나이 드는 게 장점이 될 수 있고, 작가로서 더 분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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