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해체 철학자’ 데리다의 삶 복원하기

등록 2019-08-30 06:00수정 2019-08-30 20:17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 평전
데리다가 남긴 방대한 자료 토대
현대철학 대가의 삶 생생하게 되살려
데리다, 해체의 철학자
브누아 페터스 지음, 변광배·김중현 옮김/그린비·4만8000원

해체, 차연, 산종, 보충대리…. 정의는 물론 번역어를 찾기도 만만치 않은 독특한 개념들로 20세기 지성계를 뒤흔든 해체 철학자. 철학을 넘어 문학, 법, 신학, 페미니즘, 공연예술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사상가. 자크 데리다(1930~2004)를 설명하는 최소한의 수식이다.

<데리다, 해체의 철학자>는 롤랑 바르트의 지도로 기호학 박사 학위를 받은 브누아 페터스가 쓴 데리다 전기다. 1000여쪽의 분량과 난해하기로 이름 높은 데리다의 저작들을 떠올리며 단단히 각오했던 독자들은 술술 넘어가는 책장에 놀랄 듯하다. 이 책에선 데리다의 난해한 사상 자체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대목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저작의 내용은 매우 제한적으로, 그것도 데리다나 주변 인물들이 인터뷰나 편지, 서평에서 평가한 내용으로 다뤄진다. “철학의 입문서”나 “지적 평전”을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페터스의 말이 거짓은 아니다.

2002년 5월 자크 데리다. ?Serge Picard/Agence VU 그린비 제공
2002년 5월 자크 데리다. ?Serge Picard/Agence VU 그린비 제공
대신에 이 책을 채우는 것은 데리다라는 한 인간의 삶이다. 이렇게 데리다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었던 것은 100명에 달하는 데리다의 지인들을 인터뷰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데리다 자신이 편지, 수첩, 원고를 비롯해 수많은 자료를 남겨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데리다는 “저는 아무것도 분실하지도 파괴하지도 않았습니다. 부르디외나 발리바르가 문에 붙여 놓았던 작은 메모까지도요”라고 썼다.

“자크 데리다의 삶을 기술하는 것, 그것은 (…) 끝까지 자기 자신을 프랑스 강단에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자로 여겼던 사실에 힘들어했던 한 유약한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 출신 유대인이라는 그의 출생 성분은 프랑스 본토 출신의 백인으로 파리의 일류 중고등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당시 프랑스 최고 지식인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이런 영향으로 그는 고등사범학교, 소르본대학, 콜레주드프랑스 등 프랑스의 대학에서 정식 교수 직함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미국과 독일 등 프랑스 밖에서 더 빛났다.

1970년대에 촬영된 즉석사진 속의 데리다. 데리다 개인 소장. 그린비 제공
1970년대에 촬영된 즉석사진 속의 데리다. 데리다 개인 소장. 그린비 제공
“자크 데리다의 삶을 기술하는 것, 그것은 우선 루이 알튀세르에서 모리스 블랑쇼까지, 장 주네에서 엘렌 식수까지, 그리고 에마뉘엘 레비나스와 장뤽 낭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들, 철학자들과 나눈 일련의 예외적인 우정을 회상하는 것이다.” 그가 프랑스만이 아닌 서구 지식계의 ‘스타’들과 맺는 여러 관계는 그 자체로 20세기 서구 지성사를 그려낸다. 프랑스 학계에서 데리다의 지원자였던 장 이폴리트, 데리다를 끊임없이 지지해주고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는 루이 알튀세르의 서신들은 뭉클하다. 또 다른 지적 거인인 미셸 푸코와 벌인 논쟁은 긴장감 넘친다.

1975년께 아로나에 있는 아다미의 집에서 데리다 가족이 그림 <순진한 자들의 학살>을 활인화로 재현했다. 칼을 든 이가 데리다, 이를 말리는 이가 아내 마르그리트, 누워 있는 이가 아들 장. 오른쪽의 여인은 카멜라 아다미, 뒤쪽에 보이는 사람이 발레리오 아다미다. 데리다 개인 소장. 그린비 제공
1975년께 아로나에 있는 아다미의 집에서 데리다 가족이 그림 <순진한 자들의 학살>을 활인화로 재현했다. 칼을 든 이가 데리다, 이를 말리는 이가 아내 마르그리트, 누워 있는 이가 아들 장. 오른쪽의 여인은 카멜라 아다미, 뒤쪽에 보이는 사람이 발레리오 아다미다. 데리다 개인 소장. 그린비 제공
불문학을 전공했지만 사르트르와 루소 등 철학서 또한 번역해왔던 변광배·김중현 교수의 번역이 잘 읽힌다. 특히, 그대로 번역해선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을 각주로 풀어놓은 점이 평가할 만하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소방관’ 곽경택 감독 호소 “동생의 투표 불참, 나도 실망했다” 1.

‘소방관’ 곽경택 감독 호소 “동생의 투표 불참, 나도 실망했다”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2.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이승환, 13일 윤석열 탄핵 집회 무대 선다…“개런티 필요 없다” 3.

이승환, 13일 윤석열 탄핵 집회 무대 선다…“개런티 필요 없다”

탄핵 힘 보태는 스타들…“정치 얘기 어때서? 나도 시민” 소신 발언 4.

탄핵 힘 보태는 스타들…“정치 얘기 어때서? 나도 시민” 소신 발언

우리가 지구를 떠날 수 없는, 떠나선 안 되는 이유 5.

우리가 지구를 떠날 수 없는, 떠나선 안 되는 이유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