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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감정 정치의 시대, 영상은 강렬해진다

등록 2019-08-23 06:01수정 2019-08-23 20:23

진실의 색
히토 슈타이얼 지음, 안규철 옮김/워크룸프레스·1만7000원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묘사할 능력이 있는가. 이론가들 사이에서 오래 이어져 온 인식론적 논쟁이다. 리얼리즘 지지자들은 다큐멘터리가 현실의 외관을 충실하게 재현한다고 믿는다. 반면, 구성론자들은 현실이란 개념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구축물이며 다큐멘터리가 묘사하는 것은 권력 의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 한계는 분명하다. 리얼리스트들은 때론 추악한 선동적 주장까지도 충실한 진실이라고 신뢰한다. 구성론자들은 진실과 거짓 사이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까지 극단적으로 회의론을 몰아간다. 리얼리스트들의 입장을 순진하다고 할 수 있다면, 반대로 구성론자들의 입장은 무절제하고 냉소적인 상대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 딜레마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영상 작가이자 저술가인 히토 슈타이얼은 <진실의 색>에서 다큐멘터리에서 우리가 보는 것이 실재와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두고 일어나는 의심은, 인정해선 안 되는 다큐멘터리의 결함이 아닌 결정적 특성이라고 말한다. “다큐멘터리 형식들의 특징은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흔히 잠재적이면서도 신경을 갉아먹는 불확실성, 그리고 아울러 이런 질문이다: 이것은 정말 진실인가?”

리 타지리 감독의 <역사와 기억-아키코와 타카시게>(1991)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 거주하던 일본인 12만명이 캘리포니아 인근의 만자나 수용소에 수감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미국의 명백한 헌법 위반으로 구금되었던 일본계 미국 거주민의 기억 결손을 기록한다. 출처 아이엠디비
리 타지리 감독의 <역사와 기억-아키코와 타카시게>(1991)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 거주하던 일본인 12만명이 캘리포니아 인근의 만자나 수용소에 수감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미국의 명백한 헌법 위반으로 구금되었던 일본계 미국 거주민의 기억 결손을 기록한다. 출처 아이엠디비
<진실의 색>은 인터뷰의 철학, 아카이브의 정치, 기록과 픽션, 다큐멘터리 표현의 위기 등 현대 세계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다양한 주제들을 두고 슈타이얼이 쓴 에세이들을 모은 책이다. 슈타이얼의 전작 <스크린의 추방자들>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와 이미 국내 독자들을 만난 바 있고, <면세 미술-전 지구적 내전 시대의 미술>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미디어 환경이 글로벌화, 다국적화되는 현대 세계에서 다큐멘터리는 또 다른 역설을 불러일으킨다. 다큐멘터리의 진실 주장에 대한 의심이 다큐멘터리 영상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제 영상들은 전쟁과 주가 폭락, 소수 민족 박해와 전 세계적 구호 활동을 일으킨다. 다큐멘터리들이 현실을 표현하는 대신, 현실이 다큐멘터리적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다큐멘터리의 욕구가 객관성과 진지함을 향하던 데서 점차 강렬함을 향한 욕구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와 권력은 사람들의 감정을 직접 겨냥한다. “이런 감정적 작업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은 가짜 친밀함, 심지어는 가짜 현재까지도 만들어낸다. (…)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선명함이 아니라 바로 그 흥분된 불분명함이, 다큐멘터리 이미지에 사람들을 지배하는 역설적인 권력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계를 응시하는 다큐멘터리의 간격을 다시 획득할 수 있을까? 슈타이얼은 이런 간격은 공간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윤리적이고 정치적으로, 시간의 관점에서 사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로지 미래의 관점에서만, 이미지를 지배권력에의 연루로부터 풀어내는 미래의 관점에서만 우리는 비판적 간격을 재획득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비판적 다큐멘터리즘은, 지금 수중에 있는 것―우리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관계들 속으로의 편입―을 보여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관점에서 보면, 아직 전혀 존재하지 않는, 아마 언젠가는 도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이미지만이 진실로 다큐멘터리적이기 때문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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