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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심리학은 말한다, 사람 아닌 ‘상황’을 보라고

등록 2019-08-23 06:01수정 2019-08-23 20:20

사회심리학 대가 리처드 니스벳·리 로스
60년 사회심리학 중요 연구 해설한 고전
“인간 행동엔 성격보다 상황이 큰 영향”
사회적 변화 끌어냈던 연구들 소개
사람일까 상황일까-태도와 행동을 결정짓는 숨은 힘
리처드 니스벳·리 로스 지음, 김호 옮김/심심·2만8000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매우 잘 알려진 기독교 성서 속의 우화다. 이 오래된 이야기 속에선, 강도를 만나 상처 입어 쓰러져 있는 여행자를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사제는 지나간 반면, 천시받던 사마리아인은 도와준다. 1970년대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심리학자인 존 달리와 대니얼 뱃슨은 이 우화를 비틀어 사회심리학 실험을 진행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을 바쁜 상태와 바쁘지 않은 상태로 조작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프린스턴대학의 신학생들에게 짧은 즉석연설을 녹음할 테니 근처 건물로 가라고 했다. 한 집단의 신학생에겐 “늦었으니 서두르라”고 하고, 다른 집단에겐 “시간이 아직 남아 있지만, 곧바로 가라”고 말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쓰러져 기침하는 사람을 맞닥뜨리게 되어 있었다. 실험 결과, 바쁜 신학생들은 10%만이 이 사람에게 도움을 줬지만, 시간이 넉넉했던 신학생들은 63%가 도움을 줬다.

이 ‘바쁜’ 사마리아인의 실험은 19세기 후반 태동해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구조를 규명하는 데 많은 성과를 거둬온 사회심리학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베스트셀러인 <생각의 지도>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리처드 니스벳 미시간대학 심리학과 석좌교수와 리 로스 스탠퍼드대학 심리학 교수가 쓴 <사람일까 상황일까>는 사회심리학의 교과서로 꼽히는 책이다. 지은이들은 동조, 이타성, 갈등 해결, 집단행동 등 지난 60년간 진행된 사회심리학의 주요 연구들을 ‘인간의 생각과 행동엔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보다는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핵심 원리로 풀어낸다.

사회심리학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향은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불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원인을 상황보다 성격과 성향에서 찾는 경향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런 오류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들이 사건의 다양한 변동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확신하며 예측한다는 데 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이 사건을 구성하는 것에 차이가 있지만, 이런 차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판단을 ‘보편적인 것’이라고 과신해버리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예상과 다른 쪽으로 행동하면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섣불리 단정해버리는 것이다.

앨버트 하스포트 3세와 해들리 캔트릴이 1954년 발표한 고전적 연구에선 똑같은 미식축구 경기를 보고 사람들은 서로 ‘상대팀은 비열하게 행동했고, 내가 응원하는 팀은 신중하게 대응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팀을 지지한다는 ‘동기’가 같은 사건을 인식하는 데 큰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앨버트 하스포트 3세와 해들리 캔트릴이 1954년 발표한 고전적 연구에선 똑같은 미식축구 경기를 보고 사람들은 서로 ‘상대팀은 비열하게 행동했고, 내가 응원하는 팀은 신중하게 대응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팀을 지지한다는 ‘동기’가 같은 사건을 인식하는 데 큰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이 사건을 구성하는 데 큰 차이를 보이는 요인은 다양하다. 이 중 하나가 ‘동기’다. 심리학자 찰스 로드 등이 진행한 실험에서 사형제도 지지자와 반대자에게 사형 억제 효과를 다룬 똑같은 자료를 읽게 했는데, 흥미롭게도 이들은 각자 자기 생각을 강화하는 결론을 내렸다. 두 집단의 실험 참가자들이 자기 생각을 지지하는 증거는 비판 없이 편하게 받아들이지만, 반대되는 증거는 세심하게 살펴보며 결함을 찾아내는 데 골몰했다. 더 나아가, 두 집단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하거나, 심지어 단순히 요약 보고서를 준 사람에 대해서도 편향적이고 자신에게 적대적이라고 지각했다. 친아랍과 친이스라엘 시청자가 1982년 레바논 망명자 캠프의 민간인 대학살을 다룬 방송 뉴스를 두고 보인 반응도 비슷했다. 두 집단은 언론이 부당하게 상대방을 편들었고, 자기편을 불공정하게 다뤘으며, 이런 편성은 프로그램을 만든 언론인들의 개인적인 이익과 이념을 반영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다고 사회심리학이 사람들로부터 한 발 떨어져서 인간 심리의 허점을 찾아내는 데 골몰해온 음습한 학문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심리학자들은 현실에 뛰어들어 저소득층 복지, 소수인종 교육, 공익캠페인 등에서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기여를 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사회심리학의 선구자인 쿠르트 레빈이 진행한 일련의 연구와 개입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쟁 당시 물자가 부족해지자 미국 정부에선 고깃덩어리 대신 그동안 잘 소비하지 않는 내장 부위를 먹도록 국민을 설득하려 했지만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에 레빈은 소비를 억제하는 심리를 관찰한 뒤에 주부들과 함께하는 소규모 토론집단이 도움될 것이라는 제안을 내놨다. 그러자 정보를 제공하는 강연으로 주부들을 설득하려 했을 때는 3%만이 내장을 활용한 요리를 시도했지만, 토론집단에선 30% 이상의 주부가 시도하는 놀라운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소규모 토론집단이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여기엔 집단 안에서 새로운 규범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그 규범에 합의하도록 이끌고, 손을 드는 절차로 행동을 유도하는 강력하고 정교한 동기 유발 기법이 숨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처드 니스벳 미국 미시간대학 심리학과 석좌교수. 출처 미시간대
리처드 니스벳 미국 미시간대학 심리학과 석좌교수. 출처 미시간대
이 책은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과 같은 사회심리학·행동경제학 분야의 대작들이 등장하는 데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고전적인 저서다. 특히 이 책의 개정판 서문을 쓴 세계적인 경영저술가인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로 니스벳을 꼽으며 “만약 당신이 <사람일까 상황일까>를 읽는다면 당신은 내가 쓴 <티핑 포인트>, <블링크>, <아웃라이어> 등이 속한 책의 장르를 포괄하는 하나의 플랫폼을 발견할 것이다. 이 책은 내 삶을 변화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회심리학을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학생들을 위해” 저술한 책인 만큼 독서가 만만치만은 않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을 뒤흔들 잠재력을 가진 흥미로운 책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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