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과 극좌파-마오쩌둥을 비판한 홍위병 손승회 지음/한울아카데미·4만원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은 많은 사람에게 현대사의 악몽으로 인식되는 사건이다. 수많은 지식인을 숙청하고, 인민재판·처형·식인으로 점철된 끔찍한 악몽. 하지만 문혁이 50년도 지난 지금, 이제는 그런 악몽에서 깨어나 역사적 사건으로서 문혁을 바라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손승회 영남대학교 교수(역사학)의 <문화대혁명과 극좌파>는 이렇게 ‘반면 교훈으로서의 문혁’이나 ‘광기의 문혁’에서 벗어나 “역사로서의 문혁”이란 관점으로 문혁을 바라보는 역사학 저작이다. 이런 관점에서 손 교수는 문혁의 극좌파들을 주목한다. 마오쩌둥이 제시한 문혁의 이념에 충실하다 못해 결국 마오조차 앞질러가 버린, 그래서 결국 문혁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어버린 극좌파의 궤적을 다양한 사례 연구로 되살려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문혁을 ‘상층 권력투쟁’으로 보는 것은 서구만이 아니라 중국의 문혁 해석에서도 오랜 기간 정통적 지위를 차지해왔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수세에 몰린 마오쩌둥이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등 ‘주자파’들을 제압하기 위해 “사령부를 포격하라”며 젊은이들을 선동해 벌인 정치투쟁으로 보는 해석이다. 이런 관점 아래 문혁은 초기 6개월간 집중적으로 벌어진, 주로 혁명가의 자녀들이 중심이 된 ‘홍오류’ 홍위병들이 고위 당 간부나 지식인들을 끌어내리고 조리돌림 하는 모습으로만 기억되어 왔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만들어진 포스터로, 마오쩌둥 주석이 ‘홍위병’이라고 쓰인 완장을 차고, 뒤에는 홍위병들이 깃발을 들고 전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만리장성에 오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다”라는 문구는 ‘목표에 이를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뜻의 중국어 속담이다. 출처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
하지만 이와 달리 최근에는 ‘사회 집단의 충돌’이란 관점으로 문혁에 접근하는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문혁이라는 강력한 운동이 열어낸 공간에서, 중국 공산주의 체제 아래 억압받고 불만을 품은 집단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역동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런 집단들이 바로 자본가와 국민당 간부의 자제들인 ‘흑오류’, 비정규직 노동자인 임시공과 하청공, 하방당한 지식 청년 등이었고, 이들 중 일부가 홍위병 조직 중에서도 극좌파가 됐다. 문혁이 비록 마오쩌둥의 권력투쟁을 위해 동원된 측면을 부인할 순 없으나, 대중이 ‘대민주’ 원칙을 내세우며 사회 정치 혁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모습에서 혁명의 보편적 본질이 구현됐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봐야 마오쩌둥이 시작했지만 마오쩌둥의 통제에서 벗어나 버리고, 마오쩌둥의 가르침에 가장 충실했던 극좌파가 마오쩌둥에 의해 진압당하는 수없는 ‘문혁의 아이러니’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극좌파는 마오쩌둥의 ‘계속혁명론’에 입각해, 1968년 이후 문혁을 수습하려는 일체의 기도에 반대하여 혁명위원회는 물론, 저우언라이, 군대, 문혁파까지 비판의 대상에 포함했다. 이를 통해 이들은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혁명을 중단하려 했던 마오쩌둥 또한 비판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극좌파가 내건 “회의일체, 타도일체”(모든 것을 회의하고 타도한다) 구호는 마오쩌둥 본인마저 타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줬다. 이 때문에 문혁 시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집단은, 잘못 알려진 것처럼 지식인이나 구 지주·부농과 이들의 자녀들이 아닌, 혁명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조반파’(이중 일부가 극좌파)였다. 손 교수는 이런 흐름을 홍위병 내 혈통론 논쟁, 중앙문혁소조의 극좌파 치번위의 숙청, 후난·광둥·우한의 극좌파 운동과 반대운동, 문혁 이전에 하방당한 지식인 청년들의 도시 귀환 투쟁 등 여러 사례들을 통해 세밀하게 보여준다.
“마오쩌둥과 문혁파에 대항했던 극좌파는 문혁 수습이라는 ‘재통합’·‘재영토화’·‘재코드화’를 거부하며 의미 있는 독자적인 차이 공간을 확보했다. 이상과 같은 비판을 무기로 해서 문혁을 내파하고자 했던 극좌파는 단순한 저항적 존재가 아니라 공산주의적 이상을 향해 탈주하게 되는 주체로 등장할 수 있었다.”
1968년 2월 중국 베이징 제23중학교에서 홍위병들이 마오쩌둥 어록이 적힌 붉은 책을 들고 혁명 집회를 열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손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두고 ‘극좌파를 이상화시키는 것 아니냐’ ‘극좌파가 권력을 잡았다면 더 큰 동란이 벌어졌을 것이다’라는 반론이 나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중국의 민중을 상층부에서 벌이는 정치게임에 선동당한 수동적 주체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통제되지 않는 민중의 혁명적 역량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렇게 문혁이라는 금지구역에 과감히 발을 디디는 다양한 시도들이 모여 문화대혁명이라는 세계를 뒤흔든 거대한 사건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문혁의 한 집단에 주목한 전문 학술서인 만큼, 문혁의 전체적인 서술에 궁금해할 독자들에게 손 교수는 백승욱의 <문화대혁명>(살림)과 자신이 번역한 아부키 스스무의 <문화대혁명>(영남대학교출판부)을 추천했다. 손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그동안 문혁 연구는 서구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해 왔지만, 최근엔 중국에서도 다양한 입장의 문혁 논의가 등장해 활발하게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 문혁을 선정적으로 단순화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담론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문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현대 중국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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