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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새 시대를 위한 ‘로봇과 자연의 정글북’

등록 2019-08-02 06:01수정 2019-08-02 21:10

배 침몰로 외딴섬 떨어진 로봇 ‘로즈’
아기 기러기 돌보며 동물들과 성장
참신한 설정…독특한 이야기 ‘감동’
와일드 로봇
피터 브라운 지음, 엄혜숙 옮김/거북이북스·1만4800원

<정글북>은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1894년 작품이다. 소년 모글리가 홀로 정글에 남겨져 동물들의 도움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영화, 만화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서 모글리를 로봇으로 대체한다면? <와일드 로봇>은 이런 참신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어린이 소설이다.

가까운 어느 미래, 로봇 수백 개를 실은 화물선이 침몰한다. 그 가운데 다섯 개가 해류를 따라 근처 섬으로 밀려오고, 단 한 대의 상자만이 무사히 상륙한다. 호기심 많은 해달이 전원 단추를 누르는 덕분에 이 로봇은 섬에서 눈을 뜬다. “안녕하세요? 저는 로줌 유닛 7134입니다. 로즈라고 불러도 좋아요.” 이때부터 강한 기계 팔과 다리, 학습 인공지능과 지식 데이터베이스를 갖춘 최첨단 제품의 야생 적응기가 펼쳐진다.

<와일드 로봇>의 몇몇 대목은 <정글북>을 연상하기 충분하다. 기러기 ‘라우드윙’, 다람쥐 ‘칫챗’ 같이 이름과 개성을 가진 등장동물들이 우선 그렇다. 또 섬에 사는 동물들이 서로 잡아먹지 않기로 한 ‘새벽 휴전’의 약속도 <정글북>에서 동물들이 서로 평화롭게 지내기로 한 장소, 물가를 연상시키는 설정이다.

하지만 내용에 있어서 둘은 매우 다르다. <정글북>은 가부장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소설이다. 많은 동물이 나오지만, 이 작품은 사실 동물과 별 상관이 없다. 각 동물은 어떤 역할과 계층의 ‘사람’을 대변하는 역할에 불과하다. 소설은 동물과 정글의 법칙을 소재로 어린이가 사회에서 “어떻게 권위를 존경하는 법을 배우는지”(소설가 마가니타 라스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와일드 로봇>은 다르다. 작가 브라운은 숲속 오두막에 살며 본 경험으로 각 동물의 삶을 충실히 묘사했다. <와일드 로봇>의 주인공 로즈가 동물과 맺는 관계도 모글리와 대조된다. 로즈는 여성의 성격이 ‘프로그램된’ 로봇으로서 자신의 실수로 한 기러기 가족이 모두 죽자, 유일하게 남은 알에서 부화한 아기 기러기를 보살핀다. 로즈의 보살핌으로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이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하고, 이를 통해 ‘괴물’ 취급을 받던 로즈가 동물들에게 점차 받아들여지는 모습이 작품의 큰 줄거리다. 다분히 여성적이고 생태적인 세계관으로 읽힌다.

더불어 “늘 로봇에 마음이 끌렸다”는 지은이의 로봇에 대한 이해와 사고도 깊다. 우리에게 로즈는 인간이 설계해 공장에서 생산한 과거와 분리해 생각하기 어려운 ‘제품’이지만, 섬에서 부팅된 로즈에게 자신은 섬과 야생이 전부인 존재이다. 이런 통찰은 흥미롭다. 또 로즈가 인공지능으로 동물의 행동을 관찰(학습)한 뒤에야, 서로 의사소통하기 시작한다는 설정도 제법 사실적이다. 이런 점에서 <와일드 로봇>은 고전 <정글북>을 넘는 지식과 감동이 담긴 지금 시대를 위한 동화이며,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흥미로울 이야기라 하겠다. 초등 3~6년.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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