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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다문화 담론은 낙인찍기 아닌가

등록 2019-07-19 06:00수정 2019-07-19 19:40

낙인찍힌 몸-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염운옥 지음/돌베개·2만원

유대인을 외모로 구분할 수 있을까? 한번쯤 가졌을 법한 궁금증이지만 실제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는 부질없는 짓이다. 2천년 전부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서 여러 민족과 섞여 살았던 그들이 하나의 모습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나치도 그들을 구분하지 못했다. 1934년 ‘예쁜 아리아인 아기 선발대회’에서 1등에 당선된 아이가 유대인이었음이 80년이 지난 뒤에야 알려지기도 했다. 같은 종교를 믿는다는 것 외에는 어떤 생물학적 공통점도 없는 유대인을 하나의 인종으로 ‘창조’해낸 건 반유대주의자들이었다. 민족주의와 자본주의가 번성하던 근대 유럽에서 내부의 적은 정치의 필요조건이었다. 나치에게 국가 없이 떠도는 내부의 이방인은 잠재적 반역자였고, 그들의 경제적 성공은 시기·질투의 대상이었다. 과학의 탈을 쓴 우생학과 만난 인종적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을 매부리코를 지닌 탐욕스런 열등인간으로 낙인찍었다.

인종주의는 타자의 ‘행위’가 아닌 피부색, 머리카락, 골격 같은 생물학적 특징으로 인간을 분류하고 가치 매기는 행위에서 비롯됐다. 비합리적인 것을 합리화함으로써 아프리카 흑인은 노예가 됐고, 유대인은 홀로코스트 속에 사라졌다. 최근의 인종주의는 외모·말투·옷차림·종교 등 문화적 지표가 덧대진다. 테러의 공포를 먹고 증식한 이슬람공포증은 무슬림의 의복과 관습을 ‘제2의 피부’로 만들었다. 수녀들의 복장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히잡은 악마화하는 편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염운옥 고려대 강사는 <낙인찍힌 몸>에서 인종주의의 밑바닥에 깔린 분류의 욕망과 시선 권력의 뿌리를 파헤치며 그 허구성을 통렬하게 논박한다. 인종주의를 통해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추상적 규범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낸다.

나아가 우리 사회는 과연 인종주의로부터 자유로운지를 묻는다. 그 답은 서구의 흑인·유대인 차별은 인종주의로 인식하면서 우리 안의 무슬림이나 아시아인 차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중성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주목할 건 한국사회의 ‘다문화’ 담론이다.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는 한국문화를 제외한 외국문화다. 그 외국문화에는 유럽문화나 미국문화가 빠져 있다. 문화는 가변적이고 혼종적이다. 그러나 다문화주의는 이를 매우 본질적으로 정의한다. 다문화 담론이 그 선의와 무관하게 낙인찍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1970년대 독일이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자 한편에서 “노동자를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며 반발했다. 일만 하기를 바랐는데 인권을 요구하자 이런 소리가 나왔다. 2019년 결혼 이주자,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국은 결코 인종주의에서 벗어나 있지 않고 되레 무력하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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