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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공장 동네는 살기 나쁘다’는 교과서가 이상해요

등록 2019-07-19 06:00수정 2019-07-19 19:58

문만 열면 엄마 아빠 공장인 독산동
서로 돌봐주던 행복한 마을 공동체
소중한 유년 정경 생생한 그림에
나의 독산동
유은실 글, 오승민 그림/문학과지성사·1만5000원





[문제]
2. 이웃에 공장이 많으면 생활하기 어떨까?
① 매우 편리하다.
② 조용하고 공기가 좋다.
③ 시끄러워 살기가 나쁘다.

받아쓰기에서 ㅁ과 ㅂ도 헷갈리는 은이가 처음 치른 사회과 고사에 나온 문제다. 공장 동네에 사는 은이에겐 이보다 쉬울 수 없는 문제다. 정답은 1번! 비가 그어졌다. 채점 정답은 3번. 선생님은 “이 동네처럼 공장이 있으면 살기가 나쁘다”며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고 말한다. 은이는 대혼란에 빠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웃에 공장이 있으면 참 좋기만 한데 말이다.

<나의 독산동>은 유은실 작가가 다섯 살부터 스무 살까지 살았던 독산동에 대한 매우 편리했고 따뜻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유분방한 동심을 오답 처리한 독산초등학교 사회과목 시험지는 30여년 전 유년의 추억을 들춘다. 화려하지 않고 다소 시끄러운 동네였어도 아름답고 소중한 한때를 간직한 공간이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지금은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선 서울 금천구 독산동 일대는 30~40년 전에는 구로공단이라 불리던 곳이다. 공장에 딸린 쪽방에서 오빠와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어린 여공들이 주경야독을 했다. 슬픔과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산업화를 일구던 굴뚝산업의 최전선에는 독산동 아이들의 부모님도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나의 독산동’은 은이와 또래들을 어른으로 키워낸 행복한 마을 공동체였다. 동네 엄마들은 모든 아이들의 엄마였다. 승환이 엄마 아빠는 공장에서 일하다가도 때가 되면 밥을 주고 숙제를 봐준다. 고무줄놀이를 하다 다쳐도 이웃 공장에서 일하던 엄마가 달려와 어느새 무릎을 닦아준다. 때론 이웃 엄마가 “은이 착하다”며 돈을 쥐여준다. 공장 담벼락에 올망졸망 기대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는 맛도 최고였다. 또 인형공장이 있어서 좋았다. 할머니들이 부업 하다 잘못 만든 인형은 동네 아이들 차지. 눈이 없으면 단추공장에 가서 맘에 드는 단추를 찾아 붙이면 된다. 그렇게 세상에 둘도 없는 인형을 갖고 놀 수 있었다. 혼자 잠들어도 무섭지 않았다. 문만 열면 공장이고 거기에 엄마 아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책의 매력을 돋우는 것은 수십년 전 모습이 공존하는 독산동 골목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한 오승민 화가의 그림이다. 글줄은 적지만 페이지마다 풍성한 색감으로 거친 듯 섬세하게 표현한 그림이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한다. 30여년 전 모습이 남아 있는 독산동을 여러차례 오가며 스케치했다고 한다. 공장의 기계소리, 대서소의 펜글씨 소리, 깔깔거리는 동네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부모에겐 잊고 있던 유년의 기억을, 아이에게는 마냥 신나는 동심을 선물하는 책이다. 8살 이상.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문학과지성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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