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성-현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 21인매켄지 와크 지음, 한정훈 옮김/문학사상·1만7000원
어느 시대이고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에 대한 철저한 분해와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타진했던 비판적 지식인들은 존재했다. 가깝게는 카를 마르크스와 장 폴 사르트르, 미셸 푸코 등이 그런 지식인들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와 같은 시간을 호흡하며 사는 비판적 지식인들은 누가 있으며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21세기 지성>은 미국 뉴욕 뉴스쿨에서 미디어문화연구학과 교수로 일하는 매켄지 와크가 21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 21명을 꼽아 이들의 사상을 살펴보며 비평하는 저서다. 책 디자인이나 제목이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떠올리게 하지만, 영국의 진보적 출판사인 버소의 임프린트인 ‘뉴 레프트 북스’에서 출간된 비판이론서다.
매켄지 와크는 미국 뉴욕 뉴스쿨에서 미디어문화연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문화 연구 입문을 가르치고 있다. 문학사상 제공
이 책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가라타니 고진, 주디스 버틀러, 샹탈 무페, 마우리치오 라차라토처럼 낯익지만 좀처럼 전체상을 파악하기 힘든 사상가들의 논의를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아직 국내에 한 권의 저서도 소개되지 않은 (주로 영미학계 쪽인) 이론가가 9명 가량 되는데, 이들의 작업을 미리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와크는 독특하게도 이들을 “해커계급”이라고 부른다. 해커는 더이상 통신망과 컴퓨터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정보를 유출하는 이들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사회과학자,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 등은 복잡한 자연적, 기술적, 사회문화적 신진대사의 일부인 ‘정보’를 처리하는 이들이다. 이들과 노동자들의 공동 노력이 지적재산권으로 상품화되고 그 가치의 대부분이 지배계급에 의해 착취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다양한 관점을 가진 여러 사람이 협력해 세계의 총체적인 상을 그려보고 새로운 신진대사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일일 것이다.
“나는 (…) 다양한 부분적 총체인 지적 작업이 보다 동지적 관점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정보의 개별적 해커로서 우리는 분열과 페티시즘을 지향하는 세상 속에서 상품 형태를 재생산하는 프로세스에 갇혀 있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역사관을 그저 종합하는 것을 넘어 부분적 시각을 서로 연결하는 언어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직 국내에는 잘 소개되지 않은 프랑스 경제학자인 얀 물리에 부탕은 인지자본주의 연구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주의 분석을 현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 만약 마르크스가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본다면, 그곳 산업의 일부는 더는 희소성과 육체노동에 의해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업자본주의 이후의 인지자본주의는 집단적인 인지 노동력을 기반으로 돌아간다. 부탕의 저작 <꽃가루 사회 선언>은 인지자본주의 체계에서 지배계급이 일벌들의 노동력을 빼앗는 방법을 분석하며, 꽃가루를 옮기며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일벌임을 다시금 주장한다.
폴 프레시아도는 스페인 출신의 파리8대학 교수로 성정치학의 선도적 연구자이지만 아직 한국에는 상륙하지 못했다. 그는 <테스토 정키>에서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하는 경험과 함께 ‘섹스-젠더 산업 복합체’가 만들어내는 ‘육체의 정치학’을 관리하는 것에 중심을 둔 상품경제를 분석한다. 프레시아도는 2015년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후에 폴이라고 이름을 바꿨는데, 이 책의 저자인 와크는 2018년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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