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테 블로크 지음, 김미덕 옮김/갈무리·1만9000원 “글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게 필수죠. 그래서 간혹 화가 나도 참아야 하고…. 말하자면 ‘알았어, 그 방식으로 그냥 하지 뭐’ 그러죠.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한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나도 그것을 따르리라 생각해요. 분란을 안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쓰는 일종의, 감정의 전략적 억제를 하는 거죠.” 샤를로테 블로크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명예 부교수(문화사회학과)는 학계 조직에서 나타나는 감정과 감정 관리를 분석하기 위해 박사과정생,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 50여명을 인터뷰했다. 훈련된 합리적인 연구자들로 가득하고, 중립적 시선을 추구하는 학계라는 공간은 마치 감정과는 무관한 곳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학계에 자부심, 기쁨, 화, 시기, 질투 등 다양한 감정이 존재한다는 점을 흥미롭게 드러낸다. 앞서 인용한 조교수의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감정관리 전략을 지은이는 ‘친하기 정치’라고 부른다. 조교수는 자신의 승진을 평가할 동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전략도 있다. 조교수는 ‘속이기 게임’을 통해서 자신이 느끼는 의심과 불안을 숨기고 자신이 지금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복화술’은 자신이 거둔 성취에 자부심이나 기쁨을 표현하면 안 된다는 금기를 우회하면서 복잡한 코드를 통해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에 붙인 이름이다. 저자가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는 학계의 모습은 “유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직장”이다. 하지만 학계의 많은 성원은 학계를 떠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분노와 실망감, 체념, 시기, 슬픔을 느끼면서도 연구와 협력에서 나오는 열정과 기쁨, 만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감정을 금지하는 학계의 일반적인 문화를 문제시하고, 감정이 가진 역할을 인정하는 감정 지성”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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