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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구라파를 만난 조선인들의 대답은?

등록 2019-06-28 06:01수정 2019-06-28 20:05

우리 안의 유럽, 기원과 시작
김미지 지음/생각의힘·1만6000원

“개와 같이 항상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눈다.”

18세기 후반, 청나라에서 들여온 지도와 문헌을 살피던 다산 정약용은 아란타(네덜란드)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영길리(영국)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업으로 본업을 삼아 사해를 주류하면서 배를 집으로 삼는” 부랑한 존재들로 표현했다. ‘구라파 오랑캐’들을 향한 조선인들의 불길한 시선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경탄과 배움으로 바뀐다. 당시 외국의 사정을 조선에 부지런히 전했던 <한성순보>는 구라파주를 두고 “장사를 하면 반드시 이득을 보고,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기는 주”라며 이들의 부강을 강조했다.

개항 이후 일제 식민지 시기에 이르기까지, 구라파를 접했던 조선인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새로운 문명에 맞닥뜨린 그들의 두려움과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안의 유럽, 기원과 시작>에서 저자는 당시 조선이 맞이했던 유럽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 그들을 배척하면서 동시에 수용해야 했던 조선인들의 낯섦과 당혹스러움에 집중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를 비롯해 각종 문헌자료와 기록물을 풍부하게 인용한 것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저자는 조선과 유럽의 첫 만남으로 ‘이양선의 출몰’을 꼽는다. 조선인들은 18세기 조선 땅 앞바다에 출몰한 서양 선박을 두고 ‘황당선’이라 불렀다. 말 그대로 ‘모양이 눈에 설어서 황당한 것’이라는 의미였을 정도로 서양은 미지의 세계였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시작으로 서양 국가들과의 교역이 시작되면서, 유학을 토대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개신유학자들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게 된다. 이후 유럽에 대한 조선인들의 인식은 제1차 세계대전, 히틀러 집권 등 세계사적 격변을 통과한 뒤 다층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독일은 세계의 ‘지낭’(지혜의 주머니)인 동시에 “화염같은 복수열”(1935년 <동아일보> 사설)로 세계를 전쟁의 위협에 빠뜨리는 존재였고,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넘보는 ‘천덕꾸러기’이자 당대 지식인들이 선망했던 문학과 예술의 나라이기도 했다.

“법국(프랑스)인은 성급하고 감정적이며, 영국인은 머리가 기완하고 이성적이다.” 1926년 잡지 <동광>에 실린 글에서 구라파 국가들의 성정을 비교한 것은, 발전한 서양국가의 국민성을 논하는 동시에 ‘우리만의’ 국민성을 찾으려던 시도이기도 했다. 이처럼 저자는 유럽을 맞이한 조선인들의 대응이 낯선 문화를 배척하거나, 혹은 발전된 문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 했던 수동적인 움직임이 결코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조선과 근대 문화를 위해 ‘나름의 대답’을 찾아나갔던 당대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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