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없는 마을 앨러스테어 보네트 지음, 방진이 옮김/북트리거·1만7500원
“나는 맹키에군도의 면적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매료된다. 하루에도 두세 번은 광활한 땅이 되었다가, 밀물 때가 되면 아홉 개의 작은 섬만이 남는다. 아홉 개 섬 중에서도 단 하나만이 그나마 면적을 측정할 만한 크기다.”
저지섬에서 멀찍이 떨어져 영국 최남단 해안을 이루는 맹키에군도. 북트리거 제공
세상의 빈틈을 찾는 사람, 명백해 보이는 세계가 사실은 모호하고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밝혀 이곳을 더욱 매혹적인 장소로 재발견하는 탐험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땅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영국의 사회지리학자 앨러스테어 보네트 뉴캐슬대 교수의 저서가 또다시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지도에 없는 마을>은 인간이 정확하게 측정하고 기록하는 영역을 벗어난 미지의 장소 39곳을 다룬다. 전작 <장소의 재발견>(한국어판 2015년)을 읽은 독자들이 지은이에게 재발견을 요청한 곳이거나, 알고도 미처 다 언급하지 못한 장소의 작은 비밀들까지 속속들이 담아냈다.
쓰레기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사는 이집트 카이로의 무카탐 마을. 북트리거 제공
보네트 교수는 지도가 사람들의 관념처럼 고정돼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해안선은 바뀌고, 새로운 섬이 끊임없이 떠오르며 영토가 쪼개지기도 하고, 기이한 폐허나 부자연스러운 장소, 피난처와 틈새 공간이 쉼 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책은 이렇게 지리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현기증을 유발한다. 제멋대로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수많은 섬들, 고립된 곳과 미완의 국가들, 인간이 꿈꾸는 자기만의 유토피아들, 신주쿠역의 유령 터널처럼 환영이 떠도는 장소들, 검은 돈이 머무는 에든버러의 어떤 곳, 지도의 저작권을 보호하려고 일부러 잘못 표시한 트랩스트리트, 상류층이 가진 헬리콥터의 도시인 상파울루, 카이로의 쓰레기 도시 등 지구촌 구석구석을 설명한다.
헬리콥터가 최상위층의 전유물이 된 상파울루. 북트리거 제공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인간의 열망은 암울하거나 독창적인 공동체를 낳기도 한다.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지도는 늘 유동적이며 국경은 점선으로 표시된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중심부에 있는 크리스티아니아는 1000여명이 거주하는 작은 자치국으로 자체 통화, 법률, 정부가 있다. 자유지상주의 및 조합주의 도시 실험이 가장 완성형에 가깝게 실현되었다는 이곳은 많은 논란에도 여전히 진화 중인 대안의 섬이다.
이런 ‘장소’가 중요한 까닭은 거기에 온갖 ‘이야기’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이들 사랑은 갖가지 유대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자연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와 장소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토포필리아(topophilia)는 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다시 말해, 우리가 평생 동식물에게 느끼는 친밀감은 헌신을 낳고 장소에 대한 소속감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장소에 대한 갈망을 지은이는 “열애 감정”으로 표현한다. 곳곳에 아포리즘 같은 문장이 반짝인다.
책 뒷부분에서 지은이는 고고학을 공동체 정당성의 근거로 삼으려는 다수 국가들의 ‘땅파기’ 행태를 강하게 비판한다. 중국, 인도, 이집트, 이스라엘 역사가들은 모두 ‘반만년’이라는 역사를 강조하는데, 이는 “토착민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도록” 수천년 세월을 증명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믿지 못하는 사회는 계속 땅을 팔 수밖에 없다”고 비꼰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그는 지리학이 명확한 국경이나 확정된 정보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기존 관념이 무너진다고 말한다. 분열하고 기묘해지는 장소들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계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