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이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에서 연 2019 서울국제도서전 첫날 주제강연자로 나섰다. ‘영원히 새롭게 출현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강지희 문학평론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그는 지난달 노르웨이 오슬로 인근 숲에서 연 ‘미래도서관’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었다. 작가들이 봉인된 작품을 건네면 95년 뒤인 2114년 해당 숲에서 100년 동안 자란 나무를 종이로 만들어 출판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아래는 한강 작가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다.
한강: 배내옷 짓고 실과 천으로 퍼포먼스를 하는 애도를 했어요. 원고를 막상 건네 주려고 하니까 너무 슬펐어요. 작별해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한번 꼭 안고 줬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오슬로 시장이 원고를 받아들었는데, 사람들한테 “아기를 안고 있는 것 같다”고, “기분이 너무 이상해, 아기를 안고 있는 거 같애”라고 얘기했어요. 저한테는 꼭 백년 뒤 출간해주겠다 약속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꼭 약속한다고 말해서 놀랐어요. 그게 그렇게 약속될 수 있는 일일까. 그들의 낙관이 부럽기도 하고 그렇더라구요.
강지희: 행사 사진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이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틀즈의 노래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곳에서 특별한 인상을 받으셨나요?
한강: 이 숲은 앞으로 개발될 예정이 없다더라구요. 시유지여서 계속 남아있을 땅이라는 사실이 제게 신선했다고 할까요. 저는 한국에서, 아무것도 영속될 것 같지 않은 불안 속에서 모든 건물이 무너졌다 세워지고 자연은 언제 파괴될지 모를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원의 이미지가 새롭게 느껴졌고…, 이 흰 천으로 원고를 싼 현장에는 종이책으로 만들어질 그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거든요. 좀 미안했어요. 얘네들이 95년 뒤에 100명의 작가들의 책을 위해 베어져야 되는 거니까.
인상깊었던 말은, 숲 관리인의 얘기였는데, “100년의 시간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늘 그 시간 단위로 일을 한다”는 거였어요. 심을 때 100년 뒤 울창해질 계획을 세운다고. “100년?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얘기했는데 오랜 시간이 있는, 그런 숲이었어요.
강지희: 작가님이 원고를 감싼 흰 천에 담은 의미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는지요?
한강: 제가 그날 행사 아침에 문득 생각이 나서 단순한 영어로 썼던 것을 그냥 읽었거든요. 즉석 한국어로 번역해보면 이런 얘기예요. “서울에서 이 흰 천을 가져왔습니다. 이 천은 한국에서 갓난아이의 배내옷으로 이불 홑청으로도 장례식 때도 쓰입니다. 제겐 이 행사가 원고와 이 숲의 결혼식 같기도 했고 장례식 같기도 했고 땅을 어루만지는 자장가 같기도 했습니다….” 이런 내용의 글이었어요.
강지희: 100년 뒤 발표될 원고를 쓰시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을 듯한데요, 어떤 마음으로 쓰게 되셨어요?
한강: 일단은 제목(<사랑하는 아들에게>)을 제외한 모든 게 비밀이라고 약속이 돼있어 내용을 말씀드릴 순 없고… 프로젝트 자체가 미래를 생각해야만 하는 거죠. 제가 그렇게 낙관적인 사람이 아니거든요. 100년이란 시간이 가로지르는 우리 모두의 죽음과 그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가 어떤 행위인가를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들이 저를 매혹시켰던 것이에요. 그래서 그 프로젝트에 참가하겠다 했던 것이고요.
결국은, 이 프로젝트가 ‘기도’라고 생각했던 것은, 기도라는 것은 확실할 때는 하지 않잖아요. 너무나 불확실하고 아무런 확신이 없고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이 있고 그런 모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말과 행동과 바람을 가질 때 기도라고 하잖아요. 이것도 미래에 대한 기도 같은 거죠.
100년 뒤 살아남을지, 당장 기후변화나 핵발전소라든지 사실은 몇십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100년 뒤를 기약하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지금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어 사라지고 원고 준 사람들도 죽어 사라지고 그러는 사이에 새로운 작가가 태어나고 스태프가 될 사람들이 옮겨받는 거죠. 릴레이 경주처럼 불씨를 옮기는 것처럼 그런 행위를 하는 건데. 사실은 덧없다고도 할 수 있고요. 그렇지만 그런 불확실성이 바로 프로젝트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라 생각했어요.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됐어요.
강지희: 100년을 가로지르는 시간과 기도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기존 활자매체보다 영상매체를 통해 뭔가 접하는 일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작가님의 경우는 어떠신가요? 여전히 종이책 많이 보게 되시는지 아니면 영상매체 관련해서 영향받는 일이 생기시나요?
한강: 지금 요즘 가장 뜨거운 매체가 유튜브라고 하잖아요. 저같이 기계를 잘 못 다루는 사람은 매뉴얼 화면을 보고 실수하지 않고 할 수 있어 그런 건 좋은데 그렇지만 그 매체로 어디까지 깊게 들어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돼요. 저는 종이책이 오히려 편리하다 생각이 되고요. 그래서 좀 이상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유튜브 다음엔 종이책이 아닐까?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너무 낙관적이지 않느냐고 해요. (웃음)
사람들이 지금은 아날로그에 너무 굶주리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에 배고파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앞에 존재하는 어떤 이미지들의 총합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일정한 크기와 무게, 감촉이 있는 매체를 우리가 그리워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구요. 책을 통해 할 수 있는 많은 행위들이 있잖아요. 펼치고 귀퉁이 접고 밑줄 긋고 뒤집어서 두기도 하고, 가방에 갖고 다니기도 하고 꽂기도 하고 반복해 읽기도 하고 눈도 안 아프고…. 그런 매체를 점점 그리워하고 있지 않나 생각도 들고요.
어떻게 보면 나중에는 책을 사랑하는 취향이라는 게 특별한 것이 되어서 우리가 어떤 연대의식을 갖고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 최근에는 패션의 완성은 책이다, 이런 말도 있더라구요.(웃음) 연예인들이 책 읽는 모습도 보여주고… 이런 것들이 이미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그리움과 필요함 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들고요.
또 하나는 증강현실의 시대가 온다고도 하는데 아무리 증강현실을 경험한다 해도 정말 누군가의 내면으로 들어갈 순 없잖아요.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 속으로 들어갈 순 없잖아요. 정말 누군가 영혼 속으로 들어가는 건 할 수 없는데,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이 결국 책 속에 있지 않나? 특히 문학작품 속에… 어떤 인간의 내면 끝까지 들어가볼 수 있는 매체가 책이라고 생각이 돼요.
이번 도서전 주제가 ‘출현’인데 결국은 가장 새롭게 우리에게 출현해올 것은 잠시 우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믿었던 종이책과 문학이 아닌가. 결국은 (종이책과 문학이) 우리에게 새롭게 출현해올 것이고 결국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문학이 영원히 새로운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세대가 바뀌고 우리가 죽고 다른 사람들이 태어나고… 우리 이전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공유했던 인간의 삶과 죽음, 고통, 사랑, 슬픔…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에게는 영원히 새로운 주제이고 그래서 문학은 영원히 새롭게 출현할 수밖에 없고 종이책도 마찬가지로 계속 출현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강지희: 같은 이야기라도 종이책과 전자책은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책이라는 걸 한 단어나 이미지 같은 걸로 말한다면 어떻게 하실 수 있을까요?
한강: 몇년 더 지나서 책에 대한 책을 한번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저를 만들어줬고 저를 살게 해줬던 책들의 기억을 가지고 책을 한권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너무 많죠. 제가 책을 읽지 못할 때도 책을 한권 이상 갖고 다니게 되는데 그것 자체가 저에게 안도감을 준달까요. 책을 읽을 때 필요한 건 연필, 다시 펼쳤을 때 다시 읽고 싶은 곳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써보기도 하고… 그런 것이 우리를 구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들어요. 그럴 때 우리가 온전히 만나는 거잖아요. 마음만 만나는 게 아니라, 뭔가 만남이 이뤄지는 거죠, 육체적인 만남이. 그런 순간들이 모두 너무 소중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고. 다 거기 사람들이 있는 거죠. 이 속에, 이 직육면체에 커버로 닫힌 세계 속에 어떤 세계들이 있고 인간들이 있고 그런 거잖아요. 그게 언제나 특별한 거 같아요.
강지희: 이 책만은, 이 소설만은 시간이 오래 흘러도 영원히 종이책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생각이 드는 책을 꼽아주신다면요?
한강: 저는 모든 책이 종이책으로 남아있으면 좋겠는데요, 오래 무엇인가를 보관하려고 하면 인쇄된 종이가 가장 안전하다고 하더라구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 플로피디스켓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거기 저장했던 정보들을 지금은 되살릴 방법도 없잖아요? 가장 안전한 건 인쇄해서 서랍에 저장하는 거죠. 여기 이북(전자책)을 만드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가요? 저는 이북의 미래에 대해 잘 모르겠고 종이책으로 모두 남아있으면 좋겠고….
종이책을 손에 쥐면 몇페이지 읽다가 얼마나 남았지?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거죠 우리도. 어떤 분은 제 책 중에 <희랍어 시간>이라고, 그게 돌연히 끝나는 소설이거든요. 어떤 분은 이북으로 읽다가 마음의 준비를 안해서 소설이 미완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더라구요. 종이책으로 보면 ‘어떡하려고 이제야 이 두 사람이 만났지?’ 생각하면서 읽게 되고, 이렇게 늦게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걸 보여주려고 했던 걸까? 생각할 수 있잖아요. 소설은 길이나, 그런 것과도 관계가 있고, 시도 마찬가지고요. 책의 디자인 자체가 아주 많은 영향을 독자에게 미치기 때문에 이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봐요. 종이책은.
강지희: 독립서점 활로도 모색한다는데 선생님도 소규모 책방 낭독회 여러번 하셨잖아요. 그때 특별하게 남은 기억이 있으신가요?
한강: 작년 작은 책방들 찾아가 낭독회를 했는데 다 너무 좋았어요. 제가 했던 방식은 하나의 단편소설을 다 같이 읽는 거였어요. 제가 시작을 하고 두 문단 정도 읽으면 이어서 다른 분들이 읽고 모두가 다 읽어서 마지막 문장까지 읽는 거죠.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속도와 다름과 그 모든 것들. 그 톤과, 그 모든 게 다른데 하나의 텍스트로 이어지는 느낌이 좋았고요. 그리고 지금 낭독회가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 구술전통으로 돌아가는 듯한? 그것도 새롭게 돌아오는 거죠. 활자매체 이전에 누군가 암송해 들려주고, 누군가 마을에 찾아와 이야기해주는 것을 듣고… 그런 걸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거죠? 영원히 새롭게 돌아오는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지금 문득.
강지희: 책 선택의 기준이 있으신가요?
한강: 너무나 직관적이어서 몇초 만에 판단하는 거 같아요. 길다 싶으면 목차를 보죠, 아 재밌겠는데, 그러다가 더 궁금하면 첫 페이지를 읽는다든지 목차로 돌아가서 읽어본다든지… 여기저기 보다보면 이 책을 사야겠다 말아야겠다 판단이 내려지고 사게 되죠. 그러면 아주 저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죠. 그 순간이 되게 좋아요. 가는 길에도 좀 읽고 집에 가서도 펼쳐서 읽고, 누가 숙제로 준 책이 아니니까. 빨리 읽기도 하고… 본능적으로 직관적으로 이게 그렇게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책인지 판단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강지희: 최근에 문학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행복하다 느껴진 순간이 있나요?
한강: 요즘은 글이 잘 안 써져서, 다행이다 행복하다기보다는 그냥… 지금 쓰고 있는 것을 완성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지금은 마감을 미루고 있는 책이 있어서 그렇게 행복한 상태는 아니고요.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삶이 힘들 때 내가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어떻게 살지?
그냥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살아낼 수 없는 우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나 자신이 말을 하고 싶을 때 신음을 하거나, 뭔가 어떤 길이 필요할 때 그때 언어라는 것이 나에게 있고 언어라는 것은 결국은 타인을 향해서, 세계를 향해서 열려있는 그런 것이니까 결국 그 언어를 통해 제가 만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게 있다는 것이 감사할 때도 있죠.
강지희: 소설에서 가장 애착가는 장면이나 잊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면요?
한강: 쓸 때는 다 많은 애착이 필요해요. 많은 애착을 갖고 쓰고 나면 그 세계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다음 소설을 쓰게 되면 또 그 소설 생각을 매일 하면서 또 다른 애착이 생겨나죠. 지금 제가 ‘눈’ 연작 삼부작을 쓰고 있는데 사실은 마지막 삼부가 너무 써지지 않아서 접고 다른 것 쓸까, 다른 것도 구상하고, 다른 것을 더 빨리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이것을 올 여름에 마무리하려고 두문불출하고 글만 쓰려고 하는데요. 삼부작의 마지막 파트가 <소년이 온다>와 관련이 있어요. 쓰고 나서의 이야기. 소설이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는지 그런 것이죠. 그런 이야기라서 자꾸 <소년이 온다>로 되돌아가게 되기도 해요. 그리고 동호를 자꾸 생각하게 되죠.
최근작이기 때문에 <흰>이라는 것이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데요. 제가 이 책을 쓰며 느꼈던, 기도 같았던 순간, 세상을 살아볼 기회가 없었던 언니에게 나의 목숨을 빌려주고 싶었던. 그 언니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고 언니가 나의 몸으로 세상을 느끼게 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생각이 나고. 그게 앞으로 제가 자꾸만 떠올리게 될 감각이 될 것 같아요.
강지희: <소년이 온다>에서 작은 촛불이 기억 나요. ‘눈 시리즈’라 얘기되는 소설이 세 편 묶일 것이라는데 눈이라는 것도 온 세상을 덮어 내기도 하지만 금방 녹는 연약한 물성이라는 점에서 이미지가 상통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눈이 불러오는 심상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한강: 그 핵심에 도달하려고 삼부를 너무 힘들게 쓰고 있는 건데요. 눈 안에는 따뜻함도 있고… 소멸하는 것이죠, 눈이라는 것은. 그래서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이고. 세번째 소설에서는 이렇게 눈에 제가 많이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것을 통과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말한 것보다 무엇인가 더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걸 통과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겨울에 이걸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추우니까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여름에 계속 눈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지내게 될 것 같아요. (웃음)
강지희: 스스로 다짐이나 결심 같은 것이 있나요?
한강: 제가 느끼는 소설쓰기는… 요즘 제가 글을 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인데, 아주아주 좁은 길, 실처럼 가는 길인 것 같아요. 그 길을 찾아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빗나가게 되면 진실하지 않게 되고 상투적이게 되고 그런 거죠. 그러니까 아주 좁은 길을 놓치지 말고, 길이 끊어졌다 생각해도 못 찾아서 그런 거야, 자신에게 생각하면서 아주 좁은 길이 있을 거라 믿으면서 그렇게 믿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강지희: 나라별로 소설의 표지도 다채롭고 일종의 해석이라 느껴졌는데 특별하게 기억에 남으셨던 외국책 표지가 있나요?
한강: 표지들 볼 때마다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게 되기도 하고 재밌어요. 너무 달라서. <채식주의자> 일본어판은 양파 하나가 딱 가운데 있거든요. 제가 편집자한테 혹시 디자이너가 안 읽은 거 아니냐고 했더니 걱정 말라며 읽었다고… 일본 독자들은 단순성을 좋아해서 담담하게 가야된다더라구요. 저는 체념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믿겠다 했는데 그 표지가 좋았다는 평이 많은 거예요. 영국판은 강렬한,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이미지여서 편집자한테 너무 세고 불편하지 않냐고 했더니 자기를 믿으라고, 영국 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고. (일동 웃음) 그때도 포기 상태로 아 그래, 했는데 그것도 영국에 낭독회하러 갔는데 사람들이 표지가 너무 좋았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 하는 기준은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어요.
<소년이 온다>도 어둠 속에서 석고로 뜬 발이 앞으로 걸어나오는 표지도 있고 커다란 새장 속에 뼈만 남은 새가 들어있는 이미지도 있고, 어둠 속에서 반투명해보이는 손이 있는 표지도 있고… 그 나라 문화나 표지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해석한 이미지가 있어요. 책이 한권 나올 때마다 고유한 색깔이 생기는 거 같아서 흥미롭게 생각해요.
강지희: 책을 사랑하고 붙들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다면요?
한강: 책을 많이 읽고 나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바쁘고 해서 책을 많이 못 읽는 시기에는 약간씩 사람이 희미해진달까, 뭔가 좋지 않아요. 나 자신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느끼게 돼요.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허기가 느껴져서 며칠 동안 몰아서 정신없이 읽을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다 충전됐다,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나 좀 강해졌어, 씩씩해졌어,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개인적인 필요, 허기, 갈망 때문에 읽게 되는 것 같고요. 책을 읽지 않고 살아갈 때는 부스러질 것 같고, 몇줄을 읽더라도 읽어야 부스러지지 않고, 부스러졌더라도 다시 모아지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강지희: 다른 음악, 미술을 보며 영향도 받는지요?
한강: 언어라는 것이 음악적인 것이니까요. 아무리 산문이라 해도 그 안에 음악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다 운율이고 음악인 거잖아요. 물론 시는 음악적인 부분이 아주 강하지만 소설 속에도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그걸 시라고 불러야 할지 음악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문장을 쓰고 있을 때 시가 침입해 들어온다고 할까요, 그걸 음악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거 같고. 실제 제가 음악 마니아거나 그렇진 않고요. 가끔 듣는 그런 정도고.
그냥 가끔 제가 조금 낙관적으로 될 때는 악기 하나로 녹음을 다시 해보면 어떨까, 발표 못한 신곡도 두개나 있는데? (청중 환호) 생각만 하고 있는데 그 음반도 주제가 겨울이에요. 언제나 계획은 좋은 쪽이기 때문에 봄이나 여름에 ‘눈’ 연작을 내고 가을에 녹음을 해서 겨울에 음반도 내야지, 생각했지만 언제나처럼 (지금은) 책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강지희: 작사 작곡 다 하시는 건가요?
한강: 네, 그런데 제 노래 기대하시면 안돼요. 속삭이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청중 환호)
강지희: 2015년 이후 많은 문예지가 생기고 폐간도 되곤 했는데 변화를 체감하시는 부분이 있을 듯해요. 문학잡지에 대해 가지는 애착이나 감정이 있으신가요?
한강: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는데 특히 좋아했던 게 문예지 읽는 것. 집에 많았어요. 아주 많을 때는 한 번에 열 종류 정도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어서, 그걸 보는 게 저에게는 오락이었거든요. 잡지 종류들은 서가에 예쁘게 꽂혀있지 않아 제가 막 봐도 되는 책이었고, 좀 다채롭잖아요. 제게는 커다란 오락거리였어요. 재밌는 것. 예를 들면 가끔 “아 이 세상 다 망해도 상관없어”, 여러분은 그럴 때 없나요? (일동 웃음) 그런 순간에 떠오르는 게, 아 그럼 문예지 어떻게 되는 거지? 모든 인간의 문화 활동이 정지하는 순간이 온다고 하면 그러면 문예지를 만드는 사람이 없어지는 건가? 아주 큰 상실감으로 다가오더라구요.
막연히 이 세계를 생각할 때 망해도 좋아, 하는 마음 다음에 문예지가 사라지는 세계구나, 라고 생각할 때 느끼는 두려움이 있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구나, 느꼈던 순간이 있어요. 몇년 전 여름 인생에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두 달에 걸쳐 집의 문예지를 다 읽은 적이 있어요. 10년 전 것부터 꼼꼼히 읽는 거죠. 그 사이에 단행본으로 묶인 것, 누군가의 등단작이 있고, 시인이 처음 다뤄진 순간이 있고, 대화하고 녹취하고 옆에서 듣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 참 좋았어요.
많은 이유로 문예지 수가 줄고 있다고 하고 지원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좀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까. 문예지가 있어야 작가들도 발표를 하고 그게 문학의 최전선 같은 건데 문예지가 줄어든다니까 그런 부분이 안타깝고. 계속해서 새로운 문예지가 생겨나고 새로운 목소리가 생겨나고 그런 과정들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감사하고요. 책 속에서 계속 만나요. 감사합니다.
정리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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