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오 지음/위즈덤하우스·1만4000원 나무꾼은 숲에서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을 수풀에 숨겼다. 사슴이 은혜를 갚는다며 나무꾼에게 소원을 물어보니, ‘예쁜 아내를 얻어 장가나 가고 싶다’고 말한다. 사슴은 선녀들이 목욕을 하러 내려오는 고개 너머 폭포로 나무꾼을 데려갔고, 나무꾼은 사슴의 조언에 따라 마음에 드는 선녀의 옷을 바위틈에 숨긴다. ‘지금쯤이면 옷이 없어진 걸 알고 큰일 났다며 울고 있겠지?’ 천만에. 선녀는 참지 않았다. 벌거벗은 선녀는 나무꾼을 찾아내 호통친다. 사회는 변하고, 사회가 요청하는 정의의 모습 역시 변한다. 어릴 적 ‘선녀와 나무꾼’을 읽으면서 남편을 버리고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가는 선녀가 ‘매정하다’고 느낀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지금은, 데이트 폭력과 불법 촬영이 범죄인 시대다. 전래동화 10편을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이야기가 <선녀는 참지 않았다>로 묶였다. 책을 쓴 ‘구오’는 대학생이 주축이 된 독서토론 모임으로, 여성적 시각이 담긴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직접 전래동화를 각색했다. 새로 쓰여진 동화에서 선화공주는 자신을 음해한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닌 서동을 궐내로 잡아들여 처벌하고, ‘우렁각시’ 대신 요리를 너무 좋아하는 ‘우렁총각’이 등장한다. 역신에게 강간당한 처용의 아내에게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시댁과 남편에게 구박을 당한 박씨부인은 여성들과의 우정에 힘입어 자신의 능력을 펼친다. 단순히 남성의 잘못을 징벌하거나 여성-남성의 역할을 바꾸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여성의 주체성과 여성들간의 연대를 부각하는 모습을 찾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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