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월마 지음, 배현 옮김/다시봄·2만5000원 1808년, 잉글랜드 남서부 콘월 출신의 기술자 리처드 트래비식은 레일 위에 증기기관을 올려놓는 형태의 교통수단을 고안해냈다. 그가 붙인 이름은 ‘잡을 테면 날 잡아봐’란 뜻의 ‘캐치 미 후 캔’. 광산의 배수펌프 성능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증기기관이 실 잣는 방적기와는 또 다른 갈래의 운명으로 들어선 순간이다. 영국에서 철도가 리버풀 상인과 투기꾼의 작품이었다면, 뒤늦게 산업화에 뛰어든 다른 나라에선 철도가 국가 형성의 씨앗이 됐다.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괴테는 철도를 지식계층이 추구해야 할 절대적 가치로 선전했다. 머뭇거리던 대륙 유럽의 일부 군주들은 철도가 군대를 신속하게 이동시켜 폭동 진압에 도움된다는 그럴싸한 논리에 하나둘씩 마음을 바꿨다. 미국이야말로 “철도가 나라를 만들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경우다. 특히 북미 대륙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대륙횡단철도는 남북전쟁(1861~1865)의 상흔을 달래는 치유 프로젝트이자 국가 재건 프로젝트였다. 대서양과 태평양이 하나의 철길로 연결되는 순간, 미국은 후발 산업국가로 우뚝 설 채비를 끝냈다. 물론, 철도의 앞날이 처음부터 밝았던 건 아니다. 심지어 젖소가 겁에 질려 우유가 안 나온다거나 양의 털이 변색될 것이고, 시속 48㎞에 이르면 승객들이 숨을 쉴 수 없으리라는 주장도 난무했다. 1828년 미국 첫 철도인 볼티모어~오하이오 철도 착공식이 열리던 시간, 당시 퀸시 애덤스 대통령은 체서피크~오하이오 운하 착공식에 참석했다. 철도를 떼어놓고 근현대 경제사를 말하기 어렵다. 초기 레일의 소재는 강철보다 탄소 함유량이 높아 잘 깨지는 주철이었다. 철도는 코크스를 사용한 현대적 용광로 기술 발전을 자극했고 철강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놨다. 철도가 금융산업에 끼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철도 건설이 당시로선 가장 덩치 큰 인프라 프로젝트였던 까닭에 여러 나라에서 자연스레 채권시장의 틀을 직조했고, 자금 조달(파이낸싱) 이외에 채권 거래와 보험·평가 등 현대적 의미의 자본시장 뼈대를 세웠다. “태양은 이제 출근 시간을 결정하지 못한다.” 전근대 사회의 시간 리듬에서 벗어나 열차 시간에 맞춰 먹고 자고 일하는 삶과 맞닥뜨린 불안과 혼돈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철도는 힘과 야만성을 동시에 갖췄음을. 파나마 관통 대륙횡단철도의 다른 이름은 ‘지옥에 놓은 철도’다. 철로 1.6㎞당 120명 꼴로 건설 노동자 목숨이 스러졌다. 제국주의 침탈의 선두자리에 선 것도 철도였다. 철도의 역사는 곧 자본주의의 역사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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