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아 지음/이학사·2만3000원 ‘독일계로 동화된 유대인 지식인’이자, ‘무국적 난민’. 이 둘은 2차 세계대전을 앞뒤로 한나 아렌트가 경험한 삶의 모습이었다. 사회철학 연구자인 양창아의 <한나 아렌트, 쫓겨난 자들의 정치>는 아렌트의 정치 행위 개념을 쫓겨난 사람들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연구서다. 저자는 아렌트가 유대인으로서 겪은 경험을 통해 ‘파리아’(pariah), 즉 쫓겨난 자들의 보편적인 정치와 역사를 사유할 수 있는 행위 개념을 발명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아렌트의 경험과 사상으로 근현대 국민국가와 사회에서 쫓겨나고 버려진 자들의 경험을 이해하고, 투쟁의 의미를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쫓겨난 자들은 단지 쫓겨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서 말하고 투쟁하는 그곳을 “다른 세계”로 만들어내야 한다. 이들이 되찾을 것은 자신들을 내쫓은 기존의 세계가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낸 다른 세계를 더 넓은 세계의 변화로 이어가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서로 다른 이유들로 쫓겨난 사람들의 상황을 알리는 말들이 그들 각자의 경험이 드러나는 ‘몸-말’로 발설되고, 기록되고, 나누어져야 한다. ‘철학’은 그러한 개인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말들의 가치를 폄하하지 않고, 의견과 편견 사이에서 요동하는 말들을 사유의 바탕이자 내용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양창아는 부산대 강사이면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 분회에 속해 시간강사 처우 개선 투쟁을 해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렌트만이 아니라 지은이의 경험까지 담아 전개한 사유 투쟁의 결과물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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