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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자금성이 직장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록 2019-05-17 06:01수정 2019-05-17 19:47

자금성의 보통 사람들-모두의 직장이자 생활 터전이었던 자금성의 낮과 밤
왕이차오 지음, 유소영 옮김/사계절·1만6800원

중국 청나라 가경 8년(1803년), 가경제가 원명원(황제의 별장)에서 식사를 하면서 몇몇 대신과 정사를 논하고 있을 때 몇 명이 그 앞을 지나갔다. 대로한 황제는 “짐이 대신을 접견하는 자리에 어찌 관계없는 자가 오가는가” 하며 신하들을 혼냈다. 그들은 입궁한 지 얼마 안 되어 규칙을 잘 몰랐을 태감과 궁 안에 머물며 잡역을 하던 일반인들이었다.

거대 봉건 제국의 핵심이었던 자금성은 흔히 물샐 틈 없는 경비와 근엄한 규칙으로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궁궐은 그곳에 터를 두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보통 사람들의 직장이자 생활 터전이기도 했다. 중국 명청시대 사회사상사를 연구한 대만 학자 왕이차오는 궁궐의 공문서인 ‘명청내각대고’를 정리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는데, 그 속에서 궁궐 속 사회상을 보여주는 내용들을 뽑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중국 명·청 시대의 중심이었던 자금성의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중국 명·청 시대의 중심이었던 자금성의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청나라 법률은 “자금성에 무단으로 들어오면 장 100대에 처하며 한 달 동안 칼을 씌우고 조리를 돌린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궁 밖 세계와 인적·물적 자원의 일상적인 교류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상인, 장인, 태감의 식구들 등이 수시로 궁에 출입했다. 어떤 경우엔 궁에서 기숙을 하기도 했다. “수레꾼이나 마부, 장인 등이 임의로 왕래하면서 추호도 거리끼는 바 없이 마음대로 출입하니 삼엄하고 조용한 길이 아니”라는 상소가 남아 있을 정도다.

건륭 27년에는 석옥이란 사람이 마음대로 자금성 안에 들어와 술을 팔았다는 기록이 있고, 태감의 휴식을 위해 후궁에 마련한 공간에 외부인이 와서 기거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궁인이 궁중의 물건을 빼돌려 민간에 팔아넘기다 적발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지안문(후문) 밖에는 궁궐의 물건들이 장물로 거래되는 가게도 있었다. 심지어 궁인에게 독촉을 하기 위해 채권자가 궁궐까지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

책은 황실과 대신들이 아닌, 궁 안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태감과 궁녀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권력의 중심부에서 비밀스러운 삶을 사는 데 지쳐 궁에서 도망치거나 도박에 빠져들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북경의 ‘중관촌’은 오늘날 과학기술의 메카로 유명한 곳인데, ‘중관’이란 말은 원래 태감을 가리키던 말이다. 명청대 중관둔은 나이든 태감들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궁에서 도망친 태감들은 도움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들르곤 했다. 명청 대에도 고려·조선에서 온 궁녀들이 꽤 있었다거나, 교지(오늘날의 베트남)에서 건축 등 여러 분야의 ‘전문 인력’으로서 태감들을 데려왔다는 사실 등도 흥미롭다.

가경 18년에는 당대 민간 종교인 천리교 신도들이 자금성 안으로 침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정치 권력은 백련교 등 당시 민간에 퍼진 비밀 종교활동을 두려워했고, “그런 사교도가 군체(群體), 곧 더욱 확장될지도 모르는 사회 집단이라는 점”에 관심을 두고 북경성 안을 엄하게 단속했다. 그러나 ‘여우 귀신’ 따위를 섬겼던 백성들은 단지 가난과 질병을 이겨내지 못하여 민간 종교와 그에 바탕을 둔 의료 행위 등에 기댔을 뿐, 반란이나 역모와는 애시당초 거리가 멀었다. 지은이는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상생활의 곤란, 질곡과 비애로 점철”된 민중의 삶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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