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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 ‘지옥’을 이해하기 위해…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읽자

등록 2019-05-17 06:00수정 2019-05-17 19:54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삶과 죽음-21세기 비판이론

스튜어트 제프리스 지음, 강수영 옮김/인간사랑·3만원

죽기 얼마 전인 1969년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유의 모델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그 모델에 몰로토프 칵테일(화염병)을 장착하고 싶어한다는 걸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보기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제는 세상을 바꾸는 데는 관심이 없고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한다는 데 있었다. 죄르지 루카치는 프랑크푸르트학파 회원들이 ‘그랜드 호텔 어비스’(Grand Hotel Abyss)에 머물고 있다고 비아냥댔다. 루카치는 ‘벼랑 끝 호텔’에 투숙한 ‘고객’들은 호텔 테라스에 앉아 저 심연 밑바닥에서 인간 정신을 파괴하고 있는 독점자본주의의 거대한 장관을 즐길 뿐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1960년대 후반 68혁명의 열풍이 불 때, 학생 시위자들은 프랑크푸르트대학 교수로 있던 아도르노의 강의실에 있는 칠판에 “아도르노가 평화롭게 지낸다면 자본주의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으며 수업을 방해했다.

1964년 4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막스 베버 사회학 학술대회’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는 막스 호르크하이머(왼쪽)와 테오도어 아도르노(오른쪽). 오른쪽 뒤편에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 위르겐 하버마스다. 출처 위키미디어
1964년 4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막스 베버 사회학 학술대회’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는 막스 호르크하이머(왼쪽)와 테오도어 아도르노(오른쪽). 오른쪽 뒤편에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 위르겐 하버마스다. 출처 위키미디어
아도르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과격한 정치적 급진주의자였던 허버트 마르쿠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행동주의자들이 사유를 공격하지만, 사유를 하려면 필요 이상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 사유는 정말 공들여 해야 한다. 사유야말로 진정한 실천이다”라고 항변했다. 이들의 이런 태도엔 비관적인 노동자관이 깔려 있었다. 독일에선 두 사회주의 정당이 적대적 분열을 반복했고, 노동자들은 노동자 엘리트와 실업 노동자들로 나뉘어 있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연구한 뷔거하우스는 “그들 중 누구도 노동자에게 일말의 희망도 걸지 않았다”고 말한다. 대신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자신들이 바꿀 수 없던 세상을 분석하는 거장급 비평가가 됐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삶과 죽음>(원제 그랜드 호텔 어비스)은 <가디언> 기자 출신인 전문기고가 스튜어트 제프리스가 프랑크푸르트학파라는 집단을 대상으로 그려낸 평전이다. 이 책은 보기 드물게 알찬 지성사적 작업으로 베냐민에서부터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프롬, 하버마스, 호네트로 이어지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상의 계보를 흥미롭게 그려낸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19년 러시아에선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했지만 독일에선 실패한 원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했다. 특히 이들은 마르크스주의 사회분석을 프로이트 정신분석과 결합해 독일 노동자들이 현대소비자본주의와 나치즘에 현혹된 이유를 분석하려고 했다.

이들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데는 개인적 배경이 작용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베냐민,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프롬 등 대부분 회원이 독일의 성공한 유대인 사업가 또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아이러니한 관계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본거지가 되는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 설립을 위한 물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도 반복된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유대인 펠릭스 바일은 세계 최대 곡물 무역상인 아버지 헤르만을 설득해 연구소를 세울 종잣돈을 기부하도록 한 것이다. 이들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여유 있는 생활 속에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가 표상하는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등을 돌렸다. “이런 오이디푸스적 갈등이 없었다면 비판이론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제프리스는 현대소비자본주의가 더욱 강력해진 상황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진단이 옳다면 항상 같은 것만으로 선택할 자유, 우리를 정신적으로 피폐시키는 것만을 선택할 자유를 통해 우리는 기꺼이 억압체계에 굴복하고 있다. (…)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남긴 연구서들은 또 다른 어둠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용하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지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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