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지음/에디투스·2만2000원 “우리가 사랑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게 뭘까? (…) 사랑에 관해 뭔가 아는 것처럼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선 창피해 해야 마땅해.”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한 대목이다. 사랑은 왜 이렇게 언어로 붙잡기가 어려울까.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자크 라캉과 알랭 바디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박영진 박사는 <라캉, 사랑, 바디우>에서 이 질문에 “사랑이 반(反)지식과 반(反)이론의 차원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사랑이 사유에게 있어서 종잡을 수 없는 사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사랑의 사이성이 또한 사유를 끝없이 유발하고 활성화시킨다. 베케트의 금언을 사용하자면, 사랑은 사유를 ‘더 잘 실패하도록’ 이끌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게 한다. 사랑은 사유를 정지시키면서 작동시킨다.” 이 책은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과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뒤얽힘을 통해 사랑을 고찰”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지은이는 먼저 바디우적 사랑의 주체가 라캉적 사랑 주체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재형상화하는지 분석한다. 바디우가 나르시시즘적 한계와 사회 정치적 규범을 단절하는 사건으로서 사랑의 만남에 초점을 둔다면, 라캉은 각 주체의 무의식적 구조를 배경으로 삼아 사랑의 만남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차이가 있다. 이 책의 다음 목적은 사랑을 사유에 아포리아를 제기하는 순수한 ‘사이’로 사유하고, 사이로서의 사랑을 라캉과 바디우의 뒤얽힘을 통해 재공식화하는 데 맞춰져 있다. 지은이는 수학과 정치에 대한 라캉과 바디우의 사유와 함께 무라카미 하루키의 ‘토니 타키타니’, 앙드레 고르의 <디(D)에게 보낸 편지>, 플라톤의 <에피노미스> 등 여러 작품을 세밀하게 읽어나가며 사랑에 관한 불가능하지만 피할 수 없는 사유를 밀고 나간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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