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사회 1-알고리즘 인문학과 노동의 미래
베르나르 스티글러 지음, 김지현·박성우·조형준 옮김/새물결·4만8000원
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
허욱 지음, 조형준·이철규 옮김/새물결·3만6000원
마르틴 하이데거는 1927년 출간한 그의 주저 <존재와 시간>에서 철학사에서 존재 물음이 사라진 ‘존재 망각’을 문제 삼으며 새로운 철학사적 전환을 이뤄냈다. 그렇다면 21세기 현시점에서 다시 물어야 할 물음이 있다면 무엇일까.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그는 ‘기술 물음’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는 20대에 은행 강도 혐의로 5년간 징역살이를 하면서부터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에서 자크 데리다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데리다와 <에코그라피>를 공저하기도 했다. 그는 하이데거와 시몽동의 기술철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바타이유의 지출의 경제학 등 다양한 사유를 결합해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기술철학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출간된 그의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문학과지성사)는 2015년에 같이 출간된 <자동화 사회 1>의 내용을 대담으로 풀어낸 책으로 <자동화 사회 1>이 어렵다면 이 책을 통해 먼저 맥락을 잡을 수 있다.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 상황에 대해 정확히 말하고, 경고할 뿐만 아니라 대안을 제안하기”를 <자동화 사회 1>의 목표라고 말한다. 출처 주미프랑스대사관
그가 보기에 인간은 근본적으로 결핍돼 있기에 기술과 도구를 사용해 외부의 자연을 변형시켜서 자신을 보완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즉, 인간은 보철적 존재다. 하지만 철학사에선 기술이나 도구에 대한 사고는 끊임없이 배제되어 왔다. 그는 구석기 동굴 벽화부터 문자, 인쇄술, 월드와이드웹(WWW) 발명이라는 인간의 ‘외부화’가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온 사실을 적극적으로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이 책에서 대결하는 문제는 파괴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인신세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번역자들은 ‘인류세’라는 일반적 번역어를 따르지 않고 ‘인신세’(Anthropocene)로 번역하는데, 어쨌든 이는 인간이 지구의 지리 환경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된 지질학적 시기를 말한다. 현대 산업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자원을 고갈시켜가며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만 치달으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그 반대 방향인 부엔트로피로 전환할지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가능성은 산업자본주의의 첨단에서 출현한 가공할 기술문명에서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자동화 기계라는 ‘파르마콘’을 ‘약’으로 바꿔내는 작업이 없이는 이것들이 내뿜는 ‘독’에 인류의 안위가 위협당할 것이라는 점이다. 스티글레르는 브뤼셀연구소 등 수많은 연구기관에서 전면적 자동화로 10~20년 안에 산업선진국들에서 실업률이 30~50%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재앙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주 7일, 하루 24시간 노동하는 인공지능 기계로 인한 산업의 전면적인 완전 자동화, 즉 ‘24/7 자본주의’가 도래한다면 “향후 20년간 고용은 규칙보다는 예외가 될 정도로 급감할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경제관념에 붙잡혀 있는 프랑스 등 각국 정부들은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데 철저히 무능한 상태다.
그는 이런 고용의 종말이 반드시 재앙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의 종말에 의해 해방된 시간은 자동화된 문화,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노동을 재발명할 수 있는 문화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자동화에 의해 가능해지는 탈자동화 문화는 부엔트로피적 가치를 생산할 수 있고 또 생산해야만 한다. 역으로 이는 내가 전에 ‘인민의 여가’라고 부른 것을 요구한다.” 인공지능 기계의 가공할 힘을 잘 이용한다면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지식과 예술, 놀이, 여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꿈 같은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것이다.
관건은 이렇게 확보한 시간을 부엔트로피적 가치를 생산할 방법을 논의하는 데 집중적으로 투여하는 사회체제를 만드는 데 있다. “노동의 미래는 완전 자동화의 전면화에서 유래하는 시간의 막대한 획득을 재분배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 소위 ‘돌파구를 여는’ 혁신은 오직 이처럼 일어날 개연성이 전혀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는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 전도’가 일어나야 한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뒤집는 니체적 ‘가치 전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노동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부엔트로피가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사고로의 전환이다.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인신세는 1993년에 웹이 등장한 이후 새로운 역사적 시대로 접어들었다. WWW가, 인신세 초기에 철도가 가졌던 것과 동일한 중요성을 가진 역사적 시대로 말이다”라고 말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이 책에선 이런 전환이 어떻게 해야 가능한지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는다. 이는 ‘알고리즘 인문학과 지식의 미래’라는 부제가 붙은 <자동화 사회 2>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에서 그는 기본소득과 함께 기여소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스티글레르가 말한 예는 아니지만, 게시물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사용자들에게 가상화폐를 지급하는 블록체인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 ‘스팀잇’(Steemit)과 같은 시도에서 이런 가능성이 조금씩 실현되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자동화 사회 1>은 새물결출판사에서 선보이는 기술철학 총서 ‘업 투 유’(up to you)의 첫 번째 책이다. 총서의 편집자이자 스티글레르의 제자인 홍콩 출신의 기술철학자 쉬위(許煜·허욱)의 <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도 함께 나왔다. 이 총서로 스티글레르의 주저인 <기술과 시간>(전 7권 예정, 현재 3권까지 출간)과 함께 한나 아렌트의 남편이었던 매체철학자 귄터 안더스의 <인간의 낙후성>, 독일 현대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의 <가속화>도 출간될 예정이다. 이번 총서가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던 기술철학에 대한 목마름을 어느 정도까지 해갈시켜줄지 지켜봐야겠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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