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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국 사회이론 구축 위한 ‘오디세이의 항해’

등록 2019-04-26 06:00수정 2019-04-26 19:53

‘에밀 뒤르케임’ 펴낸 김덕영 교수
한국적 사회학 이론 구축 위해
사회학자 13인 이론 시리즈 첫발
“이론의 산맥 그릴 사람 있어야”
에밀 뒤르케임: 사회실재론-김덕영의 사회학 이론 시리즈 1
김덕영 지음/길·4만원

대부분 사람들은 고된 노동을 끝내고 편안한 노후생활을 시작할 60살. 13인의 거봉들이 이루는 사회학의 산맥을 종단하는 유례 없는 대기획을 시작한 학자가 있다. 국내 이론사회학의 독보적 연구자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다.

그는 독일에서 박사 학위만이 아니라 하빌리타치온(대학교수 자격)까지 취득한 드문 연구자다. 막스 베버 전공자인 그가 번역한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결정판이란 평가를 받는다. 1092쪽에 이르는 게오르크 지멜의 <돈의 철학> 번역도 학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매년 3개월 동안 독일 카셀대에서 사강사로 강의를 하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저술과 번역에 몰두하며 그동안 30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해 냈다.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만난 김덕영 카셀대 교수는 “한국 사회학의 위기는 곧 이론의 위기다. 지금 한국 대학은 미국 식민지 위에 건립된 에이(A)4 10장짜리 논문공장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만난 김덕영 카셀대 교수는 “한국 사회학의 위기는 곧 이론의 위기다. 지금 한국 대학은 미국 식민지 위에 건립된 에이(A)4 10장짜리 논문공장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가 이번에 낸 <에밀 뒤르케임: 사회실재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과 더불어 <사회의 사회학>에서 예고한 바 있는 ‘김덕영의 사회학 이론 시리즈’를 시작한다. 전자를 총론으로 하여 전개될 대략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에밀 뒤르케임: 사회실재론 2. 니클라스 루만: 체계이론 3.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결합태사회학 4. 카를 마르크스: 유물론적 사회학 5. 피에르 부르디외: 사회실천학 6. 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 7. 알프레트 슈츠: 현상학적 사회학 8. 탤컷 파슨스: 구조기능론 9. 조지 허버트 미드: 상징적 상호작용론 10. 오귀스트 콩트: 실증주의적 사회학 11. 허버트 스펜서: 진화론적 사회학 12. 게오르그 짐멜: 형식사회학 13. 막스 베버: 이해사회학” 이런 식으로 한 명의 학자가 여러 사상가를 각각 700~1000쪽으로 깊게 다루는 저서를 낸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왜 대부분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정리하는 것을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 동안 완수할 가장 중요한 기획으로 삼은 것일까. 24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만난 그는 현미경과 망원경, 정물화와 풍경화, 설계도와 조감도의 비유를 들어서 답했다. “나무를 그리는 사람이 있다면 산맥을 그리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집단지성이 포괄성과 심층성을 기할 수 있다면, 개인지성은 전체성과 통일성을 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치유할 수 없는 베버주의자이지만, 베버를 넘고 사회학을 넘어서는 학제간 연구를 통해서야 사회이론의 기본적인 토대를 놓을 수 있다고 봅니다.” 궁극적으로 이 기획은 “한국 사회에 사회학 이론 생태계를 조성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한국적 사회학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 떠나는 ‘오디세이의 항해’”라는 것이다.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만난 김덕영 카셀대 교수는 “한국 사회학의 위기는 곧 이론의 위기다. 지금 한국 대학은 미국 식민지 위에 건립된 에이(A)4 10장짜리 논문공장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만난 김덕영 카셀대 교수는 “한국 사회학의 위기는 곧 이론의 위기다. 지금 한국 대학은 미국 식민지 위에 건립된 에이(A)4 10장짜리 논문공장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시리즈의 시작을 에밀 뒤르켐으로 한 것은 2017년에 맞은 그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업이 늦어져 올해야 선보이게 됐다. 김 교수는 <에밀 뒤르케임: 사회실재론>에서 뒤르켐 사회학 전반의 형성과정부터 방법론, 사상의 알짬을 담았다. 그가 뒤르켐 사회학의 핵심으로 본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철저한 사회학적 사유. “사회학이 신생 학문이다 보니, 사회학 고유의 학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처절했습니다. 특히 뒤르켐은 철학의 고유한 문제라고 보는 인식론까지도 사회학적으로 파고들어, 인간의 선험적 능력마저도 사회에서 온다고 할 정도로 치열한 사유를 전개했습니다.”

두 번째는 개인숭배다. “뒤르켐은 국가를 개인숭배라는 시민종교의 대제사장이라고 말해요. 개인은 계급과 성별 등에 관계 없이 존엄한 존재이며 국가는 개인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것이 책무라는 겁니다. 근대의 가장 큰 성취는 개인을 발견한 것입니다.” 김 교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개인숭배를 집합이상으로 하는 개인주의적 사회와 개인주의적 국가”를 뒤르켐 사회학이 한국 사회에 주는 이론적·실천적 함의라고 간명하게 요약한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심한 욕 세 가지가 뭘까요. 빨갱이, 친일파, 개인주의자예요. 그 정도로 개인주의가 아직도 정착되지 않았죠. 이번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진 낙태 문제도 그동안 여성을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으로 보지 않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아내는 남편의,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처럼 생각해왔잖아요. 하지만 국가의 역할은 가족과 같은 다른 공동체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게 뒤르켐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는 뒤르켐 다음에 다룰 이론가로 마르크스를 마음에 두고 있다. “마르크스는 엄밀하게 보면 사회학자는 아니지만, 사회학은 마르크스로부터 엄청난 자양분을 얻었어요. 저는 마르크스를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이론가로서 봐요. 그가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이론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풀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학 이론 시리즈의 다음 권을 만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일단 그는 올해 하반기에 ‘한국 자본주의 정신’을 해부하는 저서를 낼 예정이다. 내년 초엔 베버 서거 100주년을 맞아 베버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회과학방법론>의 번역본을 낸다. 선집 형태로 일부가 나왔지만 전체를 번역하는 것은 처음이다.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만난 김덕영 카셀대 교수는 “한국 사회학의 위기는 곧 이론의 위기다. 지금 한국 대학은 미국 식민지 위에 건립된 에이(A)4 10장짜리 논문공장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만난 김덕영 카셀대 교수는 “한국 사회학의 위기는 곧 이론의 위기다. 지금 한국 대학은 미국 식민지 위에 건립된 에이(A)4 10장짜리 논문공장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는 저술만이 아니라 번역에 자신의 학문적 역량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왔다. 그는 이를 일반 교양독자만이 아니라 오히려 전문연구자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학술서가 번역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은 원시 자본이 축적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쉽게 말해 장사 할 종잣돈이 없는 거죠. 저같이 30년 이상을 독일어로 공부한 사람도 원서를 읽기가 힘들어요. 모국어와 외국어는 읽고, 기억하고, 꺼내쓰는 속도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어머니 가슴에 안겨 배운 모국어가 아니면 인식과 사유에 한계가 있어요. 저도 작업할 때 좋은 번역서가 있으면 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일본에선 사상가들의 주요 저작을 대부분 두세번 거듭 번역하는 거죠.”

‘오디세이의 항해’를 막 시작한 심정을 물었다. “젊었을 땐 60살이면 대가가 될 줄 알았어요. 하하하. 하지만 지식은 나이가 들수록 농익는 거니까요. 그렇게 보면 학자로선 이제야 진정한 시작을 하는 거죠. 저는 난쟁이지만, 큰 정신과 호흡할 수 있다는 건 지식인으로 누리는 특권입니다. 지식인이라면 계속 읽고 쓰는 것이 의무고, 소명이에요. 죽어서야 끝나는.”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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