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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새장을 입은 채 나는 싸운다

등록 2019-04-12 06:00수정 2019-04-12 19:35

날개 환상통
김혜순 지음/문학과지성사·9000원

김혜순(사진)의 새 시집 <날개 환상통>에는 2년 전 시인이 연루되었던 ‘5·18문학상’ 소동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아니, 단지 아른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일이 이 시집을 낳았다 해도 좋을 정도로 그 사건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하이힐을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 그들은 말했다/ 애도는 우리 것/ 너는 더러워서 안 돼”(‘날개 환상통’ 부분)

2017년 4월 5·18기념재단은 김혜순의 시집 <피어라, 돼지>를 5·18문학상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운동을 펼치는 일부 문인이 김 시인의 미당문학상 수상 경력 등을 근거로 수상 ‘자격’을 문제 삼자 김 시인 스스로 수상을 사양한다는 뜻을 재단에 전했다. 표제작과 ‘찢어발겨진 새’ 등 여러 작품에서 그 일이 남긴 상흔이 엿보인다.

“내 시집을 찢어 새를 접어보는 나날/ 나는 <피어라, 돼지>를 날립니다// 새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 가서 혼자 죽습니다/ 내 시집도 아무도 안 보는 곳에 가서 죽습니다/ 죽기 전에 이미 실컷 두드려 맞았습니다”(‘찢어발겨진 새’ 부분)

서시에 해당하는 첫 시 ‘새의 시집’에서 시인은 이 시집을 가리켜 “내게서 새가 우는 날의 기록” “새하는 날의 기록”이라 표현한다. 시인이 만든 ‘새하다’라는 말은 추방과 탈주, 박해와 싸움의 의미를 두루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 도시에서 더 이상 자리를 차지하지 않겠다/ 더 이상 먹지도 않겠다// (…)// 웃어주겠다/ 증발하겠다/ 은퇴하겠다”(‘쌍시옷 쌍시옷’)라는 각오가 ‘새하다’의 소극적 내용이라면, “나와봐! 나와봐! 네 면상을 치고 말 테다/ (…)/ 저들과 싸울 거야/ 저들을 벨 거야”(‘바닥이 바닥이 아니야’)라는 다짐은 그 적극적·투쟁적 측면을 대변한다. 시집 안에서 시인은 ‘새하다’의 그 두 태도를 수시로 오가는데, ‘구속복’이라는 시는 일방적 딱지 붙이기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그에 대한 시적 대응을 선언하는 작품이다.

“나에게 우파에 좌파에 모더니스트에 친일파에 온갖 병을 뒤집어씌워도/ 나는 울지 않아 대신 내 콧물 가래나 받아// 물고기에게 그물을 옷이라고 하다니/ 물고기에게 튀김옷을 외투라고 하다니”(‘구속복’ 부분)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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