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브 엠리 외 지음, 박우정 옮김/마티·1만4000원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회사에서 일하는 34살 여성은 최대 2만달러까지 지원하는 직원 복지 혜택으로 난자를 동결했다. 그의 냉동 난자는 “자본주의적 경쟁과 사회정의의 실리콘밸리식 결합이 낳은 행복한 산물”로 평가받는다. 작가이자 대학강사로 일하는 40살의 한 비혼 여성은 체외수정 시술비용을 대느라 빚까지 졌다. 어렵게 만든 3개의 배아를 가리켜 “딸 둘 아들 하나”라며 위험한 감정이입을 하지만, 성공 확률은 미지수다. 한 레즈비언 커플은 각각 동시에 임신하겠다는 포부에 부풀었다가 인공수정에 거듭 실패해 실의에 빠졌다. 그저 자신들의 아이를 갖고 싶었을 뿐인 한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 여성 커플은 호르몬 조절로 정자를 만들어 ‘평범한 구식 성관계’를 통해 아이를 가지려 했다가 온라인에서 난타당했다. 비규범적 젠더 실천을 보여주는 그들 커플이 재생산에서는 체제 전복적 정치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낳는 문제’ 또한 낙태 못지 않게 정치적으로 뜨거운 화두임을 보여주는 책이 나왔다. 지난해 <보스턴 리뷰>의 페미니즘 관련 포럼에 발표된 글을 모아 엮은 <재생산에 관하여>다. 옥스퍼드대 영어과 조교수 머브 엠리는 발제문격인 글을 통해 비혼 여성, 레즈비언 커플, 트랜스젠더 여성 등이 아이를 가지려는 노력에 어떤 정치적 문제가 결부되는지 설명한다. 역사학자, 퀴어연구자,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인권운동가 들의 논박도 이어진다. 재생산에 숨은 정치성을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1970년대 가사노동의 임금화를 주장한 전설적인 활동가이자 여성주의 저술가인 실비아 페데리치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밖에도 노년기 여성들의 자기돌봄 공백 문제, 사이보그 섹스와 여성 해방, 1970년대 ‘게이해방전선’의 요구들과 역사에 대한 글들을 함께 실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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