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이 사는 나라윤여림 글, 최미란 그림/스콜라·1만3800원
[말:]과 [말]은 같은 소리가 나지만, 길고 짧음에 따라 뜻이 다른 동음이의어다. <말이 사는 나라>는 동음이의어로 포착한 기발한 이야기다. 저 너머 목구멍 동굴을 뚫고 나오는 입 속의 [말:]을 초원의 [말]로 그려 탄생한 캐릭터 [말]은 [말:]의 위력을 펄떡이게 한다.
때론 천냥빚도 갚고,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수도 말. 말의 힘은 크다. 바른말 고운말 쓰기가 인성교육의 첫머리에 놓이는 이유다. “친구들한테 예쁜 말을 써야지.” “오늘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등교하는 아이를 향한 ‘뒷머리 교육’도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라’는 것.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웃어른에게 예의를 갖추고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심성은 말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쁜 말은 꾹꾹 눌러 가둬둬야만 할까? 윤여림 작가는 나쁜 말도 내뱉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부당한 일을 강요하거나 사탕발림의 속임수가 접근할 때도 그저 착한 말로 끄덕끄덕할 순 없다. 사이다처럼 쏘아붙여 몰아내야 한다. 막상 말처럼 쉽진 않다. 결국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존감에 관한 이야기다.
말들이 사는 나라에는 개성 또렷한 말들이 더불어 산다. “괜찮아” 뭐든지 털어버리는 ‘용서말’, “미안”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말’, “많이 아프겠다” 친구 아픔에 공감하는 ‘동정말’, “사랑해” 하트를 팔로 그리고 다니는 ‘사랑말’, “나도 그래” 맞장구쳐 주는 ‘끄덕말’, “하하하하” 늘 유쾌한 ‘웃음말’…. 착한말들이 노니는 초원, 아니 입속은 사랑과 평화가 넘실댄다.
언제나 분위기를 깨는 건 “흥!” “쳇!” “으으으~!” 하며 콧김을 뿜어대는 ‘투덜말’ ‘심술말’ ‘화난말’ 나쁜말 삼총사다. ‘쟤네는 왜 투덜대고 심술 부리고 화만 내?’ 착한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착한말들은 마음이 상하고 눈물이 나도 속으로만 삼킨다. 못된 말을 하는 나쁜말들을 피해 다니는 게 유일한 대응법이다.
어느 날 나타난 ‘구름요정’은 착한말들에게 무엇이든 다 해 줄 것처럼 군다. 목 마를 땐 비를, 젖었을 땐 햇살을, 배고플 땐 케이크를 주며, 착한말들이 매우 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한다. ‘똥가루를 만들어 바치라’는 명령을 거역할 수 없게 만든다. 친절을 가장한 ‘악’의 본색 앞에서 착한말들은 노예의 삶을 살며 지쳐 쓰러져간다.
구세주는 나쁜말 삼총사. “싫어! 싫어! 싫어! 너나 만들어!” “사라져!” 부당한 횡포를 향한 나쁜 말은 되레 정당한 권리를 찾는 ‘좋은 말’이 된다. 착한말도 드디어 악을 쓰며 ‘나쁜 말’을 외쳐본다. “사라져~~.”
각자의 이름에 딱 맞는 귀엽고 유머 넘치는 말그림 덕에 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말들이 사는 나라가 알고 보면 입 속이란 사실이 놀랍고, 치석처럼 붙어 있는 한글나무 등 흘려볼 장면이 없다.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이력의 최미란 그림작가에게 ‘칭찬말’을 보내고 싶다. 따그닥 따그닥. 6살 이상.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스콜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