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외롭게 읽는 매체지만, 그런 외로움을 나눠가면서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함께 책을 읽어나가는 느슨한 ‘상상의 공동체’가 있었다고 믿어요. 그게 저한테는 중요했어요.”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책 방송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지상파 방송들이 책 방송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팟빵 도서 부문 기준 13만명이란 압도적인 구독자 수와 함께 1~3위를 놓치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팟캐스트가 명멸하는 중에도 빨간책방은 한 책을 2시간가량 다루는 진지한 책 방송임에도 6년 반 넘게 꾸준히 이어왔다.
빨간책방이 300회 방송을 기점으로 팟캐스트를 떠나 유튜브에서 새 출발을 했다. 지난 8일 첫 방송을 시작한 ‘빨간책방 티브이(TV)’는 매주 새로운 방송이 올라올 예정이다. 변화도 있다. 비문학 도서를 맡아 진행해온 이다혜 작가는 자리를 지키지만, 7년간 방송을 지켜온 김중혁 작가가 작품활동과 일신상의 변화를 이유로 하차한다. 공개방송을 진행하던 서울 마포구 합정역 부근에 있던 빨간책방 카페도 지난해 말로 문을 닫았다. 방송은 한동안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하는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의 경기도 고양시 일산 본사에서 촬영한다.
11일 서울 강변역 인근 사무실에서 만난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제가 바뀌는 미디어 환경에 눈이 밝은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선구안을 가진 분들이 좋은 기획을 제안하시면 함께하기를 주저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유튜브로 방송을 옮기는 게 큰돈을 벌려고 옮기는 게 아니에요. 요즘에 ‘유튜브로 큰돈을 벌었다’는 성공 사례가 많지만, 그건 소수의 극적인 사례일 뿐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많은 인력이 투입돼서 만드는 방송으로 큰돈을 버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출판사가 미디어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넓게 독서 대중을 만나기 위한 방식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팟캐스트에서 유튜브로 옮긴 것은 매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처럼 보인다. 이 평론가는 유튜브란 매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전엔 거대 미디어 바깥에서 인지도나 높은 수입을 얻는 게 불가능했어요. 하지만 이제 방송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할 수 있으니 큰 변화죠. 유튜브가 그동안 싸이월드나 블로그, 팟캐스트처럼 길면 7~8년 전성기를 누린 뒤에 다음 플랫폼으로 넘어갈 징검다리 같은 매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이점에 도달한 매체인 거죠. 앞으로 유튜브라는 회사는 없어질 수 있겠지만, 유튜브가 만들어낸 1인 방송이란 매체는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기존 팟캐스트 방송 댓글 창엔 팟캐스트로는 방송이 올라오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는 댓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빨간책방의 많은 고정팬들이 이 방송을 즐기는 나름의 방식이 체화되어 있어요. 설거지를 할 때, 출퇴근 길에 듣거나 하는 식으로요. 당연히 불편하게 느끼시겠죠. 하지만 유튜브의 장점도 많이 있으니 (독자들 생각도) 이런 쪽으로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을 선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다양성’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깊이 없는 넓이는 가능한데, 넓이 없는 깊이는 불가능하다고 봐요. 책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문학만 읽는 사람도 있고, 문학만 안 읽는 사람도 많습니다.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가 축소되고, 취향도 협소해지죠. 빨간책방에선 넓이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건축 이야기도 하고, 자연과학 책도, 시도 읽었던 거죠.”
빨간책방의 미덕은 평소에 독서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쉽게 읽어내기 어려울 책도 꾸준히 같이 읽어나갔다는 점이다. “300회 방송 전체에서 다룬 책들은 모두 제가 고른 책이에요. 제가 만족하고 감탄하며 읽어서 남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책이 선정 기준이었어요. ‘무슨 책을 다루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조회수가 높아질까’를 고려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지치지 않고 오래 방송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고려를 하지 않고 제가 읽었을 때 순수한 즐거움을 느낀 책으로 했기 때문인 거죠. 예를 들어 노에 게이치의 <과학 인문학으로의 초대>는 과학철학사 책이었어요. 청취자들로부터 ‘빨간책방을 들었기 때문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오는 5월로 빨간책방은 만 7년, <이동진·김중혁의 영화당>(Btv)은 만 4년에 접어든다.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게 있을까. “지금도 다른 걸 준비하는 건 있어요. 영화는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직업의 대상이고, 책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취미예요. 하지만 어떤 것이든 집착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고 보고, 머릿속으로 그것을 놓는 생각을 해요. 하던 일을 계속하다 보면 그 외의 일들은 하기가 싫어지거든요.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자꾸 오그라들어서 결국 주먹만한 세상밖엔 남지 않을 거예요.”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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