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하르트만 지음, 이덕임 옮김/북라이프·1만6800원 세계를 휩쓰는 ‘극우 정치’의 바람이 대한민국에도 상륙했을까. 5·18 민주화운동 폄훼·왜곡 발언으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7일 열린 당 최고위원 선거에서 3위로 선출됐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이 마련한 ‘5·18 망언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김 의원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의 5·18 부정 발언을 두고 “역사부정이라기보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 “우파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한국사회가 수십 년 동안 민주적 방식으로 쌓아 올린 공동체적 합의에 흠집을 내며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뤘다. 역사를 부정하고 인종차별주의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등 한 사회의 민주적 토대를 뒤흔드는 극우 정치의 물결은 이미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 세계 곳곳에 일고 있다. <엘리트 제국의 몰락>의 지은이 미하엘 하르트만은, 극우 정치가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대신 중하류층 시민들의 지지를 얻고 정당으로서 약진하는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대처하려면 ‘엘리트’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극우 정치가들은 공통적으로 ‘엘리트 때리기’에 열중한다. 프랑스 국민전선의 선거운동 모토는 “오만한 파리 엘리트들”을 대체해야 한다는 요구였고,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는 워싱턴의 “더럽고 질척거리는 마구간”을 말끔하게 청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엘리트와 지배계급을 동일시하며, 엘리트 탓에 고통받는 평범한 사람들을 구원하겠다고 나선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지은이는, ‘가짜 뉴스’에 현혹되는 무식쟁이가 극우 정치가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사회 불평등을 촉진·방관한 엘리트를 불신하는 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거나 극우 정치인에 마음을 빼앗긴다고 본다. 엘리트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매진해온 지은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각 나라 정치·경제·언론 엘리트의 배타성과 동질성이 강화되면서 신자유주의 정치가 정부 정책을 지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소득과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진 상황을 상세히 보여준다. 흔히 대처와 레이건 등 보수주의자 정당이 집권하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이끌었다고 평가하는데, 독일을 보면 이념 성향보다 정치 엘리트의 채용 방식 변화가 더 주요하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하류층 또는 노동자 출신 장·차관이 줄고, 부르주아층의 비중이 늘었다. 장관직을 완전히 떠난 뒤에 경제계 고위직으로 옮겨갔던 과거와 달리, 최근 10년 동안 고위 행정직과 경제계, 특히 금융 부문의 고위직 사이를 오가는 일이 일반화됐다. 중하류층과의 연결고리가 약해진 채 ‘그들만의 세상’에서 만든 정책들은 부유층에게 매우 유리했다. “세금에 관한 1999~2009년 독일 연방정부의 정치적 결정들을 들여다보면 급속히 벌어지는 빈부 격차에 대한 책임은 상당 부분 정부에 있다.” 지은이는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 반드시 극우 정치 지지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는 정치 엘리트의 개방성을 강화하는 정치 혁신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일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엘리트 제국’은 이미 몰락하고 있다. 민주 정치를 어떻게 구현하여 어떤 이들에게 권력을 위임할 것인가. 우리의 선택 문제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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