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가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오은 시인과 다양한 표정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웃는 것을 좋아한다. 웃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한다면 얼굴이 붉어지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함께 웃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며 같은 장면을 떠올릴 때, 앞다투어 터지는 웃음을 특히 좋아한다. 함께 웃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지난 설 연휴 때 힘든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원래 웃음이 있어야 했던 자리에 언젠가부터 스트레스가 들어선 것이다. 편하게 웃기 힘들다고 토로하는 사람도 늘었다. 우울증과 만성피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한 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동력인 웃음에 대해 돌아보는 일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사회학자 김찬호(56)는 지난해 말 낸 <유머니즘>(문학과지성사)에서 유머가 단순히 웃기기 위한 스킬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정한 세계를 공유하는 사람들만이 함께 웃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세계를 공유하지 않은 유머, 상대에 대한 존중 없이 발휘되는 유머는 얼마나 공허한가. 누군가에 대한 비난과 폄하가 웃음을 유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하면 안 된다.
김찬호는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교육학을 강의하고 있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부센터장을 지낸 바 있고, 현재 교육센터 마음의씨앗 부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쓴 책은 남들이 접근하지 않는 영역을 다룬 것이 많다. <모멸감>, <눌변>, <돈의 인문학> 등 실체가 불분명한 감정, 우리를 지배하는 통념과 습속, 인문학에서는 선뜻 다루지 않던 소재를 다룬다. 그 외에도 사회, 교육, 문화,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20여권의 책을 썼다. 그의 연구는 인간의 허울을 날렵하게 찌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함께 잘 살자”고 따뜻하게 속삭인다.
“‘행복’을 가늠하는 한 가지 지표로서,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어떨까.”(<유머니즘>) 이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함께’다. 인터뷰도 ‘함께’ 하는 것이다. 혼자 갔지만 함께의 마음으로 지난 1일 김찬호를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만났다.
‘함께’라는 말
―코너 제목이 ‘요즘은’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작년 말에 새 책 <유머니즘>이 출간됐어요. 책이 나온 후에 방송이나 신문에서 진행하는 이런저런 인터뷰에 응하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2월21일에 있을 북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영화관에서는 처음 하는 강연이에요.”
―유머니즘이라는 용어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유머와 휴머니즘이 결합된 말입니다. 인간의 존엄을 세우면서 더 나은 삶을 빚어내는 유머. 유머를 주어로 놓았을 때 이런 해석이 가능하고요. 인문정신을 주어로 삼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놀이와 웃음으로 표현되는 탁월한 인문정신.”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싹튼 시기는 언제였나요.
“제가 처음 글의 맛을 안 것은 문학을 통해서였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고운기 시인이 친구였어요. 정식 출판은 아니지만, 중학교 때 이미 시집을 냈더라고요. 그걸 읽고 깜짝 놀란 거죠. 그 무렵부터 시를 무척 좋아하게 됐어요. 대학교 들어가서 처음 구입한 책도 김종삼 시집 <북 치는 소년>이었어요. 학생 때 없는 돈을 털어서 시집을 사곤 했지요.”
그는 서재에 들어가서 노트를 한 권 들고 나왔다. 재수할 때 만든 노트로, 본 용도는 일기장이지만 필사 노트이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도 담겨 있었다. 당시에 ‘누가 이 시대에 재수를 마다할까’라는 생각에 노트의 이름을 <재수 예찬>으로 붙였다고 한다. 1980년, 서슬 퍼런 시기였다. 그의 노트에는 청년기 때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이 쓴 글도 적혀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지만, 그는 그때의 글들을 자양분 삼아 본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학으로 시작해서 인문학의 외연이 점점 넓어진 셈이군요.
“고려대 명예교수 김우창 선생님의 책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읽어왔습니다. 1980년대에 사회구조와 체제의 변혁을 둘러싼 담론이 지식사회를 지배할 때, 그분의 글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었지요. 전공으로 삼은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인문학에 발을 들이게 되었지요. 신학에 대한 관심도 컸어요. 다행히 연세대에 신학과가 있어서 학문적으로 많이 깊어질 수 있었지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긴 했는데 지적으로 풀리지 않는 게 너무 많았거든요. 그때 읽은 실존주의 신학자 폴 틸리히(파울 틸리히)의 <흔들리는 터전>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문학과 신학이 저를 지금 여기로 이끌어준 셈이죠.”
―부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교육센터 ‘마음의씨앗’은 어떤 곳인가요.
“미국에 파커 제이 파머(김찬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등 그의 책 2권을 번역하기도 했다)라는 교육 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가 있어요.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저작이 국내에도 소개되었는데, 교사들이 많이 읽는 책이에요. 신뢰 서클이라는 걸 만들어서 지난 20년 동안 운영해오기도 한 사람이에요. 교사들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일종의 내면 성찰 프로그램이죠.”
―그 프로그램을 국내에 도입하신 건가요?
“네. 저희가 10년 전에 이분과 접촉을 하고 프로그램을 한국에 가져와 10년째 진행하고 있죠. ‘피정’(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일)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주로 시를 읽어요. 시를 깊게 읽고 함께 나눈 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지요. 나를 살핀다는 점에서 피정의 성격과 유사하고요. 작년에는 10주년을 기념해서 교사들과 함께 <나는 오늘도 교사이고 싶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어요.”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공동체처럼 들립니다.
“네, 아시다시피 교사들이 무척 힘들잖아요. 대내외적으로 점점 힘들어지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교사로서 어떻게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을 이어갈 수 있을까란 물음이 공동체의 중심에 놓여 있지요. 가르치는 게 스킬만 있어서는 안 되잖아요. 유머가 스킬이 아니듯이.(웃음)”
자신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 많아
그 분노를 혐오로, 폭력으로 표출
스스로와 사귀고 대화할 시간 가져야
모멸감 찾아오면 스스로 질문을
‘이 감정이 나에게 말하는 게 뭘까’
우린 모두 남루하고 허름한 존재
평가받고 비난받는 데 익숙해져
모자란 부분 안 보여주려 안간힘
자기 자신에게 좀 너그러워져야
“독일의 오페라 감독 아우구스트 에버딩의 말이 생각나네요. ‘유머 감각이 없다는 것은 내 현실과 차이가 나는 다른 현실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음을 뜻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돌아보는 일, 현재를 점검하는 방식
―수업 시간에 노인 인터뷰를 숙제로 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세대 간의 만남에 해당되겠네요.
“그렇지요. ‘노인교육론’이라는 수업이었어요. 살면서 한번도 관심을 기울여본 적 없는 대상과 대화하는 일은 중요하지요. 다른 수업에서는 이런 숙제를 내준 적도 있어요. 평생 절대로 안 만날 것 같은 사람을 찾아가 인터뷰해보라고.”
―말만 들어도 어렵네요. 과제물에는 어떤 사람이 등장하던가요.
“어려운 숙제 맞아요. 우리의 행동반경이 빤하잖아요.(웃음) 인터뷰 대상에 권투선수도 있고 자살 시도를 여러번 한 여성도 있었지요. 숙제를 공유하며 저도 크게 배우고 학생들도 깨달았어요. 사람들의 삶이 저마다 크게 다를 줄 알았는데 멀리서 보면 별로 안 다르다는 점이었어요. 나도 어쩌면 저렇게 될 수 있겠다, 저 사람도 나와 비슷한 궤적으로 여기까지 왔구나, 그런 발견들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세대 간에도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겠네요.
“두 가지 일화가 떠오르네요. 한 학생이 자기 외할머니 얘기를 기록해온 거예요. 외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얘기에 한창 빠져들었는데, 옆에 있던 엄마가 그러더래요. ‘엄마 왜 나한테는 그런 얘기 한번도 안 해줬어?’ 외할머니가 대답했대요. ‘네가 언제 한번 물어본 적 있었냐?’ 가족으로 살면서도 깊은 얘기를 한번도 나눈 적이 없는 거죠. 복덕방 아저씨를 인터뷰한 학생도 기억에 남아요. 동네에서 인심이 안 좋기로 소문난 분이었대요. 딱딱하고 자기 고집이 강한, 전형적인 꼰대였던 거죠. 인터뷰를 하고 나니 그때부터 그렇게 자기한테 잘 대해주더래요. 외로운 거죠 다들. 자기 얘기를 들어줬다는 게 너무 고마운 거고. 우리에겐 우리 얘기가 있고 그것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알았지요. 큰 수확이었어요.”
―실생활에서도 어른들에게 일부러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는 시간을 가져야겠어요.
“얼마 전 방송 인터뷰에서 명절 때 어른들이 자꾸 불편한 질문을 하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을 들었어요. 저는 거꾸로 젊은이들한테 부탁을 했지요. ‘요령이 있다. 먼저 질문을 해라. 선제공격해라. 삼촌, 옛날에는 어땠어요?’ 그렇게 하면 질문 받을 틈도 없고 오히려 그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워하시거든요.”
―<생애의 발견>이라는 책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는 것이 나이 들수록 더욱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가 뭘까요.
“저는 인간을 역사적 존재라고 생각해요. 역사란 말을 우리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이거든요. 기억을 떠나서는 ‘자기’가 없잖아요. 내 기억을 바꾸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나는 곧 나의 기억이지요. 그 기억이 어떻게 구성돼 있고 편집돼 있는지를 스스로 모른다면 내가 전혀 다른, 엉뚱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거죠. 실제로 나를 구성하고 있는 걸 돌아보는 일이 무척 중요하지요. 평소에 자기가 살아온 이력을 파악하는 것은 현재를 점검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살잖아요.”
―나이가 들어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틈틈이 해야 될 일인 듯도 싶어요.
“핵심은 이거예요.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자기와의 화해가 제대로 안 되고 있어서 그 분노를 바깥으로 표출하거든요. 공격적으로, 폭력적으로. 혐오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지요. 자기와 왜 그렇게 화해가 안 될까요. 스스로와 사귀고 대화할 시간이 없어서 그렇죠. 이런 작업들은 그것을 허용하는 능동적인 행동이고요.”
―그동안의 저작들이 다루는 대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빚어지는 일에 대한 관심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심의 뿌리에는 제 모멸의 역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수치심이 좀 많았어요. 사내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대놓고 놀림을 받았으니까요. 중학교 때 아이들에게 시달리면서 한 2년 동안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 골몰했어요.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일, 하면 안 되는 일에 대해 생각했지요. 사람한테 시달린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스스로가 확 바뀐 것 같아요. ‘내가 이런 면이 있었구나’ 깨닫는 순간들이 많았지요.”
유머, 삶의 파동을 포착하는 능력
―저도 학창시절에 목소리 톤이 높다는 이유로 놀림과 괴롭힘을 당했어요. 혐오를 처음 경험한 셈이었는데, 당시에는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었어요. 돌이켜보니 그게 바로 모멸감이었더라고요.
“네. 그런 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의 키워드가 되기도 하지요. 저 또한 스스로를 계속 탐구하다 모멸감이란 단어에 딱 꽂혔던 거죠. 저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서 책(<모멸감>) 집필을 시작했어요.”
―모멸감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잖아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감정 자체를 바라봐야 해요. 아주 어려운 일인데, 자꾸 연습하면 조금씩 거리두기가 되더라고요. 감정과 나를 분리하는 거죠. 감정은 감정이고 나는 나잖아요.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니까 문제가 커지는 거예요.”
―감정과 그 감정을 품는 나 자신을 분리해야 하는 거군요.
“루미(13세기 페르시아 시인)의 시 ‘여인숙’을 읽으면 여러 가지 감정이 손님으로 찾아온다고 하잖아요. 모멸감이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이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거꾸로 질문을 해보는 자세가 필요해요. 모든 모멸감이 다 정당한 것도 아니에요. 지체 높은 양반들 중에서 별것 아닌 것에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거든요. 엉뚱한 데에 자존심을 걸었다가 그게 충족이 안 되면 스스로가 화나는 거지요. 애먼 사람한테 갑질하는 것으로 풀기도 하고요. 이때의 모멸감은 정당하지 않지요.”
―모멸감의 근원을 먼저 파악해야겠네요.
“점검해봐야죠. 나의 부풀려진 자아나 허상 때문에 생겨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많은 경우에 여러 감정이 섞여 있어요. 딱 잘라 얘기할 수도 없을뿐더러 사람마다 모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다를 테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만 해도 매일매일 흔들리는데.
“자기 자신에게 좀 너그러워져야 해요. 흔들리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는 흔들리는 것을 문제 삼아요. 어차피 사람은 많은 순간 좌충우돌하고 때때로 모순적인 존재가 되잖아요. 그 사실을 온전하게 끌어안아야 해요. 그냥 내버려두는 것과는 달라요. 나를 성찰하는 거니까요.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이 너무 안 돼 있어요.”
―그게 참 어려워요. 타인을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
“어릴 때부터 자꾸 평가받고 비난받고 여기에 익숙해져서 그래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거든요. 예를 들어서 우울증 환자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수용하라’ 그러면 자포자기하라는 건가요? 아니거든요. 우울증 환자라는 걸 받아들인다고 해서 치료를 안 받는 것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받아들이는 게 치료에 도움이 되죠.”
루미의 시 ‘여인숙’은 이렇게 시작된다. “인간이란 손님이 머무는 집,/ 날마다 손님은 바뀐다네.// 기쁨이 다녀가면 우울과 비참함이,/ 때로는 짧은 깨달음이 찾아온다네.” 어떤 감정은 금세 왔다가 사라진다. 어떤 감정은 찾아온 줄도 몰랐는데 아주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문다. 그 감정으로 인해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또 어떤 감정은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두고두고 기억나는 말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유머처럼.
―누군가의 말에 웃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행동 같아요. 경계심이 없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알리는 거죠. 유머의 미덕도 여기서 나오는 것 같고요.
“말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웃음은 낚아채니까요. 직관력이 작용하는 거죠. 대화할 때 미미한 신호들이 엄청나게 오가잖아요. 그 신호를 서로 잘 파악하는 관계에서 대화가 잘 이루어지죠. 웃음도 잘 터지고요. 유머 감각은 결국 포괄적인 소통 능력을 파악하게 해주는 단서인 셈이에요. 유머가 뛰어나다는 것은 그 사람이 마음의 여러 가지 신호들, 무의식적인 파동을 잘 포착한다는 의미니까요. 결이 잘 맞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결이 아예 맞지 않는 사람들은 무시하거나 콧방귀를 뀌지요.
“맞아요. <모멸감>과 <유머니즘>이 얼핏 보면 관련 없는 것 같지만, 연결고리가 바로 비웃음이에요.”
―개그 프로그램을 봐도 누군가를 대상화하거나 희화화할 때 불편해지잖아요. 반면 나의 부족한 부분을 과감하게 보여줄 때 외려 건강한 웃음이 나오는 것 같아요. 나도 웃고 상대도 웃게 되니까.
“그래서 저는 가족과 있을 때 많이 망가지는 편이에요. 방탄소년단 노래가 나오면 갑자기 춤추거든요. 얼마나 웃기겠어요. 요가도 잘 못할 정도로 몸이 경직된 사람이 방탄소년단 춤을 추니까. 그렇게 안 하면 무슨 재미로 살아요. 우린 다 어느 정도는 바보 아니에요?(웃음)”
―그것을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몸과 마음이 경직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는 알잖아요. 우리가 남루하고 허름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서로 감추기 위해 가면무도회를 하잖아요.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어요. 노래방 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풀리는 게 아니잖아요. 일상에 작은 축제를 만드는 것, 저는 그게 유머라고 생각해요.”
―축제 같은 순간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야겠네요.
“어빙 고프먼이라는 사회학자가 그랬어요. ‘모든 건 다 연출이다.’ 연출을 일정한 방식으로밖에 안 하니까 감정이 이상하게 표출되는 거예요. 다양하게 자기를 연출할 수 있어야 해요. 어린아이 같은 자기, 어수룩하고 바보 같은 자기도 섞여 나올 수밖에 없지요. 그걸 받아들이는 데가 많지 않으니, 우리는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계속 애쓰잖아요. 나의 허술함을 감추려고 일부러 더 과시하고 위세를 부리죠.”
대입, 취업, 결혼…나이 따른 과업
달성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
일상 재구성하는 게 더 절실해져
좀 못나 보여도 되는 관계 중요
비노동세계서도 삶의 재미 발견을
교육은 내면의 불을 켜는 일
아이들 에너지를 제도교육이 거세
지성과 유쾌함, 공부와 놀이를
다시 연결하는 게 교육의 최대 도전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가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자택 서재에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일상의 재구성 절실”
―나이에 따라 응당 해야 한다고 요구받는 과업 때문에 가면이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과업이 달성하기 점점 힘들어지잖아요. 대학 입학, 취업, 결혼, 내 집 장만, 자녀 교육… 예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어려워졌죠. 순전히 개인의 몫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문제죠. 자포자기하는 사람도 많아졌고요. 자기의 일상을 재구성하는 게 절실해요.”
―자포자기가 아니라 일상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거네요.
“일상의 재구성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좀 못나 보여도 되는 그런 관계예요. 친한 사이에도 괜히 비교하고 과시하려는 습성이 있잖아요. 가족끼리 그렇기도 하고요. 결코 편안하지 않죠.”
―실제로 교육하실 때도 그러셨겠네요.
“제 큰딸은 고등학교에 안 갔어요. 본인의 뜻이었죠. 가기 싫다고 해서, 3년 동안 자기 식대로 살다가 검정고시 봐서 대학 가고 지금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 3년이란 시간이 자기한테 굉장히 소중했다고 해요. 왜냐면 스스로가 삶을 구성해야 했으니까요.”
―그 시간을 알아서 채워야 했을 테니까요.
“아이는 ‘학교를 왜 안 갔어?’란 질문을 계속 받았어요. 반대로 ‘학교 왜 갔어?’란 질문은 안 한다고요. 사람들은 제게 ‘왜 운전 안 하세요?’라고 질문해요. ‘왜 운전하세요?’란 질문은 안 하잖아요. 운전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어야 해요. 마찬가지로 학교에 안 가는 것만큼 학교에 가는 것에도 이유가 있어야 해요.”
―웃음을 교육의 장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돌이켜보니 학교에서는 웃어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교육이란 게 내면의 불을 켜는 거잖아요. 불을 켜려면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고 발산해야 해요. 아이들은 가만 놔둬도 다 웃잖아요. 서로 웃기고 웃고요. 그들에겐 하루가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생명의 기운으로 시간을 채우니까요. 제도교육 시스템에 진입하면서 그게 다 거세되지요. 산업사회에서는, 고도성장기에는 특히 더 그렇죠. 모든 걸 다 도구화하고 목표가 미리 설정되어 있으니 경쟁해야 하고요. 우리의 노동, 학습 등이 수단에 불과하게 되죠. 놀이는 주변적인 것으로 규정되고요.”
―배움은 즐거워야 하는데 말입니다.
“인공지능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 시기에는 지성과 유쾌함, 이 둘을 만나게 하는 일이 중요해요. 인간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정서적 힘이에요. 정서적 힘은 유머를 통해서 더 확장될 수 있지요. 어려서부터 공부와 놀이, 일과 놀이가 분리된 채 살아가니 배움이 즐겁지 않아요. 이걸 다시 연결하는 작업이 교육의 최대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삶이 각박하다고, 팍팍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웃음, 우리에게 필요한 유머는 무엇일까요.
“독일의 오페라 감독 아우구스트 에버딩의 말이 생각나네요. ‘유머 감각이 없다는 것은 내 현실과 차이가 나는 다른 현실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음을 뜻한다.’ 저성장과 고령화가 맞물려 삶이 점점 팍팍해지는 세상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일의 세계에 전력투구해왔습니다. 이제 비노동 세계에서도 삶의 의미와 재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나고 부자들이 돈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에서 풀려나 양극화도 줄어들 수 있어요. 유머에는 일상의 소소한 경험에서 즐거움을 찾으면서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창조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타인들과 나누는 웃음에서 그런 마음의 신비를 누리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깊은 우물 안에서 지내는 것 같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산책을 하고 책을 읽는다. 삶의 패턴을 되찾고 싶은 마음에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김찬호가 말한 “내가 좀 못나 보여도 되는 그런 관계”다.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피식피식 웃다가 이따금 환히 웃기도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슬픔 사이를 가까스로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 같은 웃음을 생각한다. 그 웃음을 위해서 발휘된 유머에 대해 생각한다. 그 유머에는 유대감과 배려심이 담겨 있다. 나는 조금 더 건강해져서 집에 돌아온다.
김찬호는 유머가 허용되고 통용되고 수용되는 것을 넘어, 기꺼이 그것을 즐기는 상태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 부단히 틈을 만들어야 한다. 못난 내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은 사람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 우리가 내쉰 숨과 건넨 말이 어딘가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상상을 한다. 그 순간만큼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사람들이 그 건강한 순간을 자주 마주했으면 좋겠다.
녹취 원영은
김찬호를 만든 책들
에리히 프롬 <소유나 존재냐>
고등학교 시절 어느 선생님이 소개해주셔서 알게 된 책이다. 제목이 던지는 물음은 지금도 살아 있다. 인간이 얼마나 헛된 것의 노예가 될 수 있는지, 폭력의 저변에 깔려 있는 무의식적 욕망과 충동은 어떤 얼개를 하고 있는지, 휴머니즘이 구현되는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프롬의 관점은 사회학도로서 복잡한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렌즈가 되어주었다.
김종삼 <북치는 소년>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좋아했지만, 대학교 1학년 때 이 책을 통해 시어(詩語)의 또 다른 깊이와 넓이를 보았다. 한 폭의 정물화 같은 작품들, 그 담백한 언어의 힘에 매료되면서 삶을 비춰보고, 아이의 눈으로 뭇 사물과 세상에 다가갈 수 있었다. 가슴이 음울해질 때, 군더더기 표현으로 글쓰기가 어지러워질 때, 시인이 일깨워준 간결함의 미학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폴 틸리히 <흔들리는 터전>
대학교 2학년 때 기독학생회(SCA)의 공부 모임에서 만나게 된 책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기존의 신앙으로 풀리지 않는 고민이 많아지고 있던 차였다. 문화신학자 틸리히는 신앙이라는 것을 ‘궁극적 관심에 붙잡힌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의 사상을 설교의 형식으로 담아낸 이 책을 읽으면서 거대한 깨우침에 황홀해졌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김우창 <지상의 척도>
대학교 1학년 때 신문 칼럼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김우창 교수님은 지금까지 사숙하고 있는 스승이다. 이 책을 통해 문학과 사회, 이성과 감성, 학문과 현실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치밀한 논리로 마음의 움직임을 탐구하는 선생님의 글에서 나는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를 배운다. 지성을 연마하는 엄격함, 내면을 가꾸는 즐거움을 경험한다.
파커 파머 <가르칠 수 있는 용기>
40대 초 대안교육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무렵,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단숨에 빨려들었다. 교사는 누구인가. 학생들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교육 공동체의 참모습은?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가르침과 배움의 본질을 파고드는 이 책이 징검다리가 되어 저자가 해온 교육운동에 접속하였고, 한국에서 지난 10년 동안 교사들과 함께 활동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