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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기술-권력-대중의 ‘생명공학 지식정치’

등록 2019-02-01 06:00수정 2019-02-01 18:21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
실라 재서노프 지음, 박상준·장희진·김희원·오요한 옮김/동아시아·3만원

설을 앞두고 명절 선물세트가 오간다. 카놀라유, 참치캔 등이 빠지지 않는다. 만약 받는 사람이 유전자변형식품(GMO·지엠오)을 원치 않는다면, ‘처치 곤란’ 선물이 될 것이다. 지엠오를 둘러싼 고뇌는 개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 영국, 독일처럼 자주 한데 묶이는 국가들조차도 생명공학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지엠오의 상업 재배가 허용되지만, 영국과 독일에서는 불가능하다. 과학기술학의 권위자로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의 지은이 실라 재서노프는 세 나라의 생명공학 프레임 자체가 다르다고 본다. 미국의 생명공학 정책은 가령 지엠오가 기존 식품과 ‘결과적으로’ 비슷한 성분을 가졌으면 비슷한 제도를 적용하는 ‘제품 프레임’으로 이뤄졌으나, 영국은 생명공학이 자연에 개입하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절차 프레임’이 우세하다. 독일은 영국처럼 위험의 사전예방 원칙을 세우는 동시에, 과학 너머 더 넓은 범위의 사회적 영향력까지 고려 가능한 ‘프로그램 프레임’을 운용했다.

민주제가 발달하고 부유한 나라들에서 “왜 동일한 과학 사실과 기술 인공물이 다른 정치적 반응을 일으키는가?” 지은이는 1980년대 세 국가에서 생명공학을 규제 문제로 접근하면서, 서로 다른 프레임을 형성하게 된 과정을 재구성한다.

미국은 환경운동과 과학논쟁이 활발한 나라지만, 생명공학의 위험을 가장 협소하게 규정했다. 정책 구성 초기에 과학계 이해관계자들이 소송을 통해 “법보다는 시장이 생명공학 발전을 통제할 수 있는 적절한 도구라는 정치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미국식 해방과 진보의 서술’은 강화됐으나, 정치적·윤리적인 문제는 밀려났다. 레이건 정부의 탈규제 기조도 한몫했다.

영국과 독일은 유럽연합의 영향력 아래 입법 영역에서 생명공학 초기 정책을 만들었다. 광우병 파동을 겪은 영국의 경우, 정부가 생명공학 이슈를 국가 신뢰 회복의 기회로 활용했다. 전문가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는 동시에 ‘하향식’ 의견 수렴에 나섰다. 독일은 정당의 역할이 확고했고, 녹색당이 초기 논쟁을 주도했다.

비교의 목적은 ‘우리’를 성찰하기 위해서다. 지은이는 다른 나라의 정책을 수입하거나 이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비교로 드러난 생명공학 정치의 우연성·연속성·역동성을 목도하면, 나라별 차이가 “대중이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간극”에서 비롯한다는 ‘관례적’ 대답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 수 있다. 지은이는 “특정 사회의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선택해 지식 주장을 시험하고 사용하는 제도적인 실천”을 드러내고자, ‘시민인식론’이란 이론적 용어를 도입한다. 민주국가는 지식을 독점하지 못하므로, 기업·정당·전문가·소비자 등 개별 행위자가 시민인식론을 구성한다. “시민인식론은 살아 숨 쉬는 도구처럼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수행되고 다시 수행되어야 한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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