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현 지음/그린비·1만8000원 “형이상학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지 않았음”을 증명한 형이상학자, 우리를 “비파시스트적인 삶”으로 이끄는 정치철학자. 하지만 이 두 초상에 비해 그의 미학자로서의 초상은 아직 그 윤곽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는 자신의 저작 중 3분의 1 이상에 예술과 관련된 제목을 붙였으며, 사상의 고비마다 예술을 안내자로 삼기도 했다. 들뢰즈에게 다가갈 때 그의 예술론에 주목하는 접근이 유효한 이유다. <들뢰즈의 미학>은 서울대 미학과에서 ‘질 들뢰즈의 감각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성기현이 자신의 학위 논문을 수정·보완해 낸 저서다. 들뢰즈의 예술 관련 논의는 문학론(<프루스트와 기호들>), 회화론(<프랜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 영화론(<시네마 1, 2>) 등을 아우르는 것으로 그의 사상이 전개되는 과정 내내 핏줄처럼 깊고 넓게 퍼져 있다. 문제는 개별 예술론에 대한 연구만으로는 미학자 들뢰즈의 초상을 제대로 그려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지은이는 들뢰즈의 미학이 ‘근대 미학을 통한 근대 미학의 전복’이라는 역설적인 과제로 수렴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근대 미학은 감각을 객관과 주관으로 나눠 전자를 학문과 인식에, 후자를 예술과 감정에 결부시켰다. 들뢰즈 미학의 목표는 이런 근대 미학의 이중성을 넘어서는 데 있다. 이는 무엇보다 새로운 감각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그것을 근거 짓는 감성 개념, 그에 부응하는 예술 개념, 그로부터 귀결되는 윤리 및 정치 개념으로 이어진다. 즉, 이 책은 감각 개념을 입구로 삼아 들뢰즈의 미학이라는 ‘리좀’으로 진입하려는 시도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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