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이 유행이다. 2011년에 시작한 민음사 북클럽은 지난해 회원이 6000명으로 전년도 2500명에 견줘 갑절 넘게 늘었다. 지난해 대형출판사인 문학동네도 북클럽을 시작했고, 마음산책과 원더박스 같은 중소형 출판사들도 북클럽을 만들어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이런 유행을 이끈 데는 ‘트레바리’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트레바리는 2015년 8월에 모두 4개 클럽에 회원 80명으로 시작해, 현재 200여개 클럽에 3천5백여명의 회원이 참여하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내 돈 내고 책 읽는 모임에 나간다’는 데 사람들은 처음엔 갸우뚱했지만,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트레바리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들 모이는 것일까. 출판 영역 취재를 담당하는 책지성팀 기자로서 가파른 성장세만큼이나 찬반이 뚜렷하게 엇갈리는 트레바리를 한 번쯤은 직접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해 말 직접 트레바리 클럽에 참여해봤다.
9월부터 12월까지 넉달간 진행되는 시즌에 참석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건 클럽 고르기. 사비를 들여서 참여하는 것인 만큼 내가 관심 있는 주제로 진행되는 클럽으로 정했다. 클래식 음악 관련 책을 읽는 ‘음악의 힘-경청’으로 선택했다. <한겨레>를 비롯해 다양한 지면에 칼럼을 쓰는 등 일반인들과 폭넓은 소통을 해온 조은아 피아니스트가 클럽장을 맡았다는데 관심이 갔다.
지난 9월 서울 서초동 재즈 클럽 ‘디바야누스’에서 가진 번개 모임 모습. 사진 트레바리 회원 제공
비용은 선뜻 결제가 약간 망설여지는 수준이긴 했다. 4개월 동안 4번의 모임이 있는데 클럽장이 있는 클럽은 29만원, 클럽장이 없는 클럽은 19만원이다. 유명인사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맡은 클럽장이 있는 경우엔 한 번 모이는데 7만원가량을 내는 것이다. 이전에 참여했었던 철학아카데미·말과활아카데미 같은 인문학 연구모임 같은 곳들은 강좌는 보통 1회 2만원 정도고, 강사가 없는 세미나는 월 1만원 정도 내면 참여할 수 있는데 비하면 꽤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도 클럽장이 음악 전문가이니만큼 음악에 관해 뭔가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참가비를 결제했다.
모임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한 오디오회사의 빌딩에서 열렸다. 이 회사에선 공연과 모임 공간을 만들어놓고,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비치하고 있었다. 첫 모임에선 자기소개부터 시작됐다. 사람들의 직업은 한의사, 변호사, 교사, 대기업 사원, 공무원, 광고회사 전 대표, 아이티벤처 회사 임원, 음대생 등으로 다양했다. 연령대는 30~40대가 많았고, 그다음이 20대가 2~3명, 50대가 한 명이었다. 남녀 비율은 비슷했다.
첫 모임은 여러 모로 인상적이었다. 첫 모임 책은 전 <가디언> 편집장인 앨런 러스브리저가 연주하기 어려운 쇼팽 발라드 1번을 연주하는데 도전하는 내용을 담은 <다시, 피아노>였다. 이날 모임에서 회원으로 참여한 아이티업체에 다니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직접 연주하는 깜짝 공연을 펼쳤다. 가을 석양이 깔린 공간에서 귀를 장악하는 격정적인 음악에 이날 공연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름이 꽤 알려진 지휘자가 그 자리에 회원으로 참석한 것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며 참석한 그는 이날 있었던 뒤풀이에서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는 그 뒤로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같이 술을 마신 회원의 전언으론 이 지휘자는 트레바리가 운영되는 방식을 듣고는 “트레바리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인지 몰랐다. 실망했다”면서 모임에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회원들은 ‘모임 한 번에 7만원씩 참가비를 내는 모임인데, 참가비를 낼 때는 영리를 추구하는 곳인 줄 몰랐다는 게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도 그가 꽤 독특한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지만, 그가 했던 말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부 트레바리 체험기 중에는 ‘트레바리에 모인 사람들은 책엔 관심 없고 대화가 주로 신상과 가십거리에 맞춰져 있다’는 비판적인 후기가 있었다. 물론 한 시즌에 200여개에 육박하는 클럽이 운영된다니, 그중에서 책은 제쳐놓고 사람들과 관계 맺기에 집중하는 클럽도 있을 법하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참여한 클럽은 클럽장이 준비해온 프로그램과 질문을 중심으로 잘 진행됐다.
지난해 9월 열렸던 첫 모임에선 회원이었던 아마추어 피아니스트가 쇼팽 발라드 1번을 연주했다. 사진 김지훈
두번째 10월 모임에선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을 다뤘는데, 조은아 클럽장이, 조성진이 우승한 쇼팽 콩쿠르의 전후 이야기와 한-일 피아노계의 경쟁 관계 등 일반인들은 알기 어려운 음악계의 뒷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흥미로웠다. 11월 영국의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가 쓴 책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다룰 때는, 조 피아니스트의 해설과 함께 보스리지의 <겨울나그네> 공연 영상을 같이 봤다. 이날 한 참석자는 꽤나 감동했는지 “회원분들이 해주신 말들이 내게 깊은 영감을 줬다”면서 고맙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오히려 내가 책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것은 특정한 몇 사람이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자기 말만 쏟아내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였다. 첫 모임을 시작하며 클럽 운영을 도와주는 ‘파트너’가 “우리는 무엇이든 말할 수 있지만, 아무렇게나 말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대화는 잘 설득하는 사람이 아닌 ‘잘 설득당하는 사람’이 만듭니다”와 같은 규칙을 설명한 이유도 그런 이들이 잦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그런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클럽장도 고루 질문을 던져 모든 사람이 발언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트레바리를 곱지 않은 시선을 보는 이들은 이곳을 ‘듀오바리’란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이름을 붙여, 트레바리가 결국 연애나 결혼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 나가는 모임이 아니냐는 의미로 붙인 별명일 것이다. 내가 참석한 클럽에서도 기혼자는 나 외엔 1명밖에 없었고, 미혼이 대다수였다. ‘파트너’도 “트레바리에서 만나서 결혼한 회원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개인적으로는 연애나 결혼 상대를 찾고 만날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자리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직장 내 연애나 소개팅은 사람을 만나는 범위가 좁기 때문에, 이렇게 상대방을 무리 속에서 관찰하고 공통의 관심사나 취향을 찾아 자연스럽게 만남으로 이어갈 수 있는 동호회 형식의 모임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래서 난 주변에 있는 연애 상대를 찾는 사람에게 “트레바리 나가서 찾아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트레바리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는 결국 비용이 적정하냐의 문제로 수렴되는 것 같다. 내가 참여한 클럽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열린 ‘번개’ 모임에선 주로 클래식 음악 공연을 함께 봤다. 공연 뒤 식사 자리와 정기 모임 뒤의 뒤풀이까지 참여하면, 한 달에 15~20만원 정도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비용은 결국 개개인의 수입 규모에 따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유명한 광고기획자였던 한 회원은 지난 1년 동안 매 시즌 2개씩 클럽에 참여했고, 2019년에도 그럴 계획이라고 이야기했다.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 20대 음대생 회원은 뒤풀이와 번개모임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유명인사를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얻기 위한 비용으론 적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실비 수준으로 운영되는 다른 강좌나 북클럽(1년에 민음사 3만3천원, 문학동네 5만원, 마음산책 7만원)과 비교해서 부담이 크다고 할 수도 있다. 내 개인적으로 어땠냐고 묻는다면, 모임 한번에 5만원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싱글일 때였다면 생각이 달랐겠지만.
마지막 모임에서 트레바리 모임 형식을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클럽장의 말로는, 클럽장들과의 모임에서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가 “트레바리로 대학과 종교를 대체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는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윤 대표는 ‘트레바리=대학+교회 모델’이란 이야기를 자주해왔다는 걸 알았다. 트레바리가 모든 대학과 종교를 대체할 수도 없을 것이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트레바리의 지향점의 일단을 보여주는 발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트레바리의 한 북클럽에서 회원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트레바리 누리집 갈무리
4차 산업혁명 등으로 표현되는 급변하는 산업구조 속에서 일생 동안 여러 직업을 갖는 일이 당연시되고, 대학 4년 동안 배운 지식으로는 평생 써먹을 수 없는 상황이 점점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미래의 대학은 6개월~1년 단위로 전문적인 실용 지식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과정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경험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젠더, 이민자 문제에서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는 주류 기독교에 청년들이 줄어드는 것처럼,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교에 등을 돌리지만 종교가 제공했던 소속감을 여전히 필요로 하는 수요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교차하는 수요를 과연 트레바리가 성공적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까? 트레바리가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란 한계 안에서 대학과 종교가 오랜 세월 수행해온 공공적인 역할들을 과연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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