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서 77
제임스 노티 외 5명 지음, 서미석 옮김/그림씨·2만8000원
탐나는 책들이 있다. 두고두고 곱씹어보고 싶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들이다. 어떤 책은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탐나게 한다. <불멸의 서 77>이 그렇다. 이 책은 도판, 시각적 이미지가 활자를 압도한다. 그런데 이 책에 수록된 책들이 인류의 삶과 사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들이라 오로지 시각만을 탓할 수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희귀하며 유명한 책과 필사본들의 도판이 창작자, 책의 특징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실렸다.
‘77개의 작품’을 선정해 수록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담긴 작품은 훨씬 많다. 여러 지은이들을 대표해 저널리스트 출신인 제임스 노티는 “옛 책이든 최신 책이든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인류의 정체성을 일깨운 작품들을 선정해 실었다. 이 작품들은 거울인 동시에 등불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15세기 인쇄술을 보여주는 대표작 <뉘른베르크 연대기>.
<에피톰>에 실려 있는 무덤 옆의 해골.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을 사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책은 4천년 전 점토판에 쓰인 수메르의 서사시 <길가메시>로부터 시작해, 입체(3D) 프린터로 제작된 식수 위생에 관한 안내서 <마실 수 있는 책>에 이른다. 인간과 책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셈이다. 낯익은 책들, 예를 들면 <주역> <손자병법> <사해문서> <금강경> <신곡> <군주론> <돈키호테> <국부론> <종의 기원> <자본> <어린 왕자> <침묵의 봄> 등도 있지만, 낯선 책들도 많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노트에 기록한 과학 저작 모음 <코덱스 레스터>.
<코덱스 레스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노트에 기록한 과학 저작 모음이다. 양피지 18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두 겹으로 접혀 있어서 72쪽이 된다. 빼곡히 쓰인 글씨 외에도 잉크로 그린 삽화가 300여점 수록돼 있다. 다 빈치가 그린 삽화가 300점 넘게 수록돼 있다면, 값은 얼마나 나갈까? 당연하게도 이 책은 거래가격이 확인된 책들 가운데 가장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1994년에 3080만달러(345억원)에 구입해 일반에 공개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은 이제까지 출간된 수학 논문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다. 1천개 이상의 다양한 판본이 발간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가장 혁신적인 판은 토목기사인 올리버 번이 제작한 1847년 영어판이다. 가능한 한 글자를 적게 쓰고 그림 형태로 유클리드의 증명들을 소개한다. “인상적인 컬러 사용으로 초기 그래픽 디자인의 걸작이 되었다.”
<기하학 원론>의 1천여 판본 중에서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꼽히는 올리버 번의 제작 판본.
1827년부터 1838년까지 인쇄물 시리즈로 발간된 <북미의 새>는 존 제임스 오듀번이 직접 그림을 그렸는데, 실물 크기로 인쇄한 497종의 새들이 실려 있다. 높이가 1m 가까이 이르며, 네 권으로 구성된 책은 이제껏 출판된 책 가운데 가장 판형이 크다.
<북미의 새>에 실린 홍학. 키가 1.5m인 홍학을 도판 크기에 맞추려고 목을 구부린 모양으로 그렸다.
책은 앞부분에 두루마리와 코덱스 형태로 만들어진 책들이 인쇄술의 발달 등으로 어떻게 형태가 변모해 왔는지 짧은 역사도 담고 있다.
황상철 기자, 사진 그림씨 제공